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경제 제재 해제는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질 때에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미 공동성명도 '새로운 미·북 관계가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수준으로 구체적인 경제협력 내용은 담지 않았다. 남북 경협을 비롯해 북한 경제 건설·개방, 교류협력이 본격 활성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소를 과제로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경제 제재 완화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더 이상 (북한의 핵) 위협이 없을 때 경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북한의 번영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경제 제재 완화 및 대북 교류협력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시작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적지 않지만, 완전한 대북 경제 제재 완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는 유지하겠지만 추가 경제 제재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300개 경제 제재를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는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중국, 한국 등을 비롯한 국제사회 대북 제재는 지속적으로 수위가 높아졌다. 총 10차례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UNSCR)은 2016년부터 북한 경제 일반에 대한 제재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인적 교류는 물론 물자와 자금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출발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와 민간 업계는 대북 경제 제재 해소 추이를 지켜보며 경제협력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모든 정부 부처가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대북 제재가 전면 해제되거나 완화하지 않는 이상 실제 사업 추진은 힘든 상황”이라며 “앞으로 남북경협을 비롯한 북한과의 경제 교류는 양자간의 상호 이익이 보장되고, 상황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대원칙 하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경제 건설 및 개방과 관련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속내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밤 전격적으로 싱가포르 야경을 둘러보며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경제발전 모델로 싱가포르를 염두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싱가포르는 정치적으로는 사실상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 경제 성장에 성공한 이례적인 케이스다. 싱가포르는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가 1965년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장기 집권하면서 독재에 가까운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싱가포르를 동남아의 물류 중심지, 금융 중심지로 키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국으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올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 수준인 6만1766달러에 이른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독재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일군 싱가포르 모델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 개방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강력한 법·제도를 내세워 이를 통제하겠다는 포석이 가능하다.
증권업계는 향후 북한 경제 개방이 본격화되면 초기 북한 인프라 투자는 전력과 철도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회담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외교·국방 실무회담이 이어질 것이고, 북한은 국제 외교 무대에 진출해 경제 개방정책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북한 경제 개방과 성장은 동유럽이나 베트남보다는 중국식 모델을 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김 센터장은 “동유럽은 공산당이 한 번에 무너지면서 자본주의화가 진행됐고 베트남은 미국 지원 아래 급속도로 글로벌 분업체제에 편입됐다”며 “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았고 사회체제 변화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대북 인프라 투자와 관련해서는 글로벌 기업보다 국내 기업이 주로 나서고, 전력과 철도에 우선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센터장은 “산업화를 위해 전력과 운송망 확보가 필수인데 항만이나 도로보다는 공항과 철도가 먼저가 될 것”이라며 “북한에서 만든 제품이 글로벌 수요보다는 우선 중국 북부 내륙 시장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문보경기자 공동취재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