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 법안이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국회 손에 이동통신산업 운명이 결정 나게 됐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이동통신 3사는 신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통신요금 인하 정책 합산 연간 2조8000억원 이상 매출 감소로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규개위 개혁, 통신 패러다임 전환, 이동통신 필수재 정의 등 굵직한 과제도 남겼다.
◇이대로면 문 닫는 이통사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규개위 회의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이통사 연간 매출감소액을 7812억원이라고 했다.
SK텔레콤이 보편요금제를 의무 출시하면 KT와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한다고 가정했다. 이통 3사에서 약 650만명이 보편요금제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는 보편요금제 가입자만 계산한 것으로 더 큰 피해는 빙산처럼 수면 아래 숨어있다.
2만원에 데이터 1GB를 주는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상위 요금제는 요금을 내리든 데이터를 더 주든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959만명이 5000원 요금인하 효과를 누릴 것으로 과기정통부는 예상했다. 이 금액이 5759억원이다.
두 효과를 더하면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이통3사는 연간 1조3581억원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과기정통부는 추산했다. 지난해 이통 3사 영업이익 3조7386억원 36%가 날아가는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현행 요금제를 유지하는 사람에게도 데이터 1GB를 더 줘야 하므로 이통사는 막대한 트래픽 증가 부담을 진다.
2년마다 데이터 제공량을 재산정하므로 트래픽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신정부 출범 이후 도입한 취약계층 요금감면(연간 5173억원), 선택약정요금할인율 상향(연간 1조원)까지 더하면 보편요금제를 포함한 3대 정책 매출 감소액은 2조8754억원으로 불어난다.
지난해 3사 영업이익 77%가 사라질 위기다. '문 닫는 이통사가 나온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이통사 관계자는 “무제한 요금제로 '업셀링'하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면서 “업셀링이 보편요금제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밀어붙이기
규개위는 과도한 정부 규제를 걸러낸다는 설치 목적과 배치되는 고강도 통신 규제정책을 통과시키면서 '규제위원회'라는 오명을 씻기 어려워졌다.
보편요금제는 2년에 한 번 요금과 데이터 제공량을 재산정하는데, 여기에 정부가 직접 개입한다.
정부가 민간 이동통신기업 소매요금을 직접 결정하는 유례를 찾기 힘든 정책이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끔 나오는 일이다.
이동통신시장에서 정부가 소매요금을 규제하는 해외 사례가 없다는 점은 과기정통부도 인정한다.
과기정통부는 규제영향분석서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는 사례를 제시했는데, 미국과 오스트리아, 일본 모두 유선전화였고 아일랜드는 인터넷이었다.
규개위가 정부의 무리한 밀어붙이기를 막기 힘든 구조라는 점에서 규개위 운영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규개위 위원 가운데 보편요금제를 찬성한 사람은 13명으로 재적위원 24명에서 과반을 간신히 달성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7명이 정부 측 위원이다. 정부가 유리한 상황에서 표결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원안 통과 비율이 높다.
2013~2016년 과기정통부 전신인 미래창조과학부의 규개위 본회의 원안의결률은 8건 중 5건이다.
◇5G·필수재…남는 고민들
보편요금제 법안의 규개위 통과는 5세대(5G) 이동통신, 이동통신 필수재 등 많은 고민거리를 던졌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이통사가 5G 투자를 진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고민은 5G 투자 필요성이다.
지금처럼 통신 인프라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환경에서 이통사는 새로운 이동통신 기술에 투자할 유인이 떨어진다.
세계 최고 통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를 요금으로 회수할 수 없다면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매년 통신품질평가를 할 근거도 희박해진다.
매년 통신요금을 내리느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느리고 저렴하게'로 통신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할 이유도 없어진다.
보편요금제 논쟁을 계기로 이동통신 필수재 논란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 도입 명분으로 '네트워크 접근권' 개념을 제시했다.
실생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 의존도가 커지면서 이동통신이 필수재, 보편재화한다는 것이다.
다가올 롱텀에벌루션(LTE) 원가공개 정보공개청구 결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대법원 원가공개 판결 관련 큰 오해가 널리 퍼졌다.
2G·3G 원가공개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필수재'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필수적'이라는 표현도 없다.
다만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해 '국민 전체 삶과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공익이 인정된다'고만 했다.
주파수에 대해 '공공재적 성격'을 가졌다고 했을 뿐이다.
이동통신서비스를 필수재로 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규개위 심사 과정에서도 지적됐다.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규개위에서 “이동통신서비스를 '필수재적이다'라고 하는 것과 '필수재'라고 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법제화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필수재라는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