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제천 화재참사를 계기로 소방 무전기 디지털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무전기간 상호호환 대책 부재로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적지 않다.
공통 표준을 개발, 전국 어디서나 제품과 상관없이 상호호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방청은 시·도 소방본부가 사용하는 노후 아날로그 무전기 디지털화를 추진 중이다. 2020년까지 약 900억원을 투입, 49%인 디지털화 비율을 100%로 높일 계획이다. 19개 소방본부별로 교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무전기는 전파간섭이 적고 통화음이 뚜렷하다. 반면에 아날로그 무전기는 잡음이 심하고 강한 전파가 유입되면 간섭으로 통화가 되지 않는다. 제천 참사 당시 상황실과 소방대원 간 무전 먹통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00% 디지털화가 결정됐다.
국내 소방 무전 시장은 미국 모토로라와 중국 하이테라가 양분하고 있다. 양사는 디지털 무전기 주요 기능인 '가로채기' 특허와 독자 'GPS' 기술로 시장을 장악했다. 문제는 양사 무전기 간 낚아채기와 GPS 기능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로채기는 A와 B 사이 무전통화에 끼어들 수 있는 핵심 기능이다. 재난현장에서 상급자가 긴급 지시를 내릴 때 반드시 필요하다. GPS는 위치 확인을 위한 기능으로 소방관 안전과 직결된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인근 소방서 여러 곳에서 합동 작전을 펼친다. 무전기간 핵심 기능이 호환되지 않으면 시민은 물론 소방관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 모토로라와 하이테라가 상호호환에 협력할 가능성은 없다는 관측이다.
소방청도 양사 제품 간 상호호환 테스트를 실시하는 등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호환성 미비는 오랜 기간 외산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는 요인이다.
국산 무전기 업계는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공통표준 개발이다. 모토로라와 하이테라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사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내 공통표준을 개발, 호환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국내 무전기 제조사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통표준 개발(안)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제출, 협의가 진행 중이다. 산업 활성화 측면에서도 공통표준 개발 당위성은 충분하다. 올해 아날로그 무전기 신규 허가가 종료되면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기존 특허를 개방하는 것이다. 상호호환 이슈 해결은 물론 5~10개 중소 무전기 제조사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외산 기업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
무전기 제조사 임원은 “무전기뿐만 아니라 중계기까지 모두 호환돼야 소방청이 원하는 전국망과 광역 대응체계 구현이 가능하다”면서 “국민 안전을 위해 기존 기술 공개 또는 더 나은 공통표준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표]소방 무전 디지털화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