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최근 LG화학, 삼성SDI와 함께 중국 CATL을 차세대 전기자동차 프로젝트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했다. CATL이 공급하는 배터리는 중국향 모델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업체가 글로벌 유수 자동차 제조사와 맺은 첫 대규모 계약이어서 주목된다.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의 한 임원은 “한국 업체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와 대규모 수주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보다 중국 기업이 함께 선정됐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CATL의 성장세가 정말 무섭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수 년 전부터 이른바 '배터리 굴기'에 나섰다. 전 세계 광산에 투자해 코발트와 리튬 등 배터리 핵심 원재료 광물을 싹쓸이하면서 최대 수요처 전기차 시장을 육성했다. 보조금 지급에 외산 배터리 제조사를 배제하는 자국 업체 보호 정책도 펼쳤다. 최근에는 주행 거리에 따라 보조금에 차등을 두도록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술 고도화를 유도하고 있다.
CATL은 배터리 굴기 선봉에 선 기업이다. 이미 생산 능력 면에선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세계 2위다. 최근 폴란드, 헝가리, 독일 등 유럽에 배터리 공장 설립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CATL도 유럽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올해 상반기 상장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달되는 자금으로 생산 능력을 더 보강할 것으로 보인다.
로빈 쩡 CATL 총재는 최근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에서 “한국 업계는 2년 동안 우리가 성장을 거듭해서 그들을 추격하는 동안 저가 전략을 통해 경쟁했을 뿐 기술 진보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언급했다.
도발에 가깝지만 발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격차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중국이 언제든 추월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