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발표되는 정책마다 붙는 수식어가 있다. '일자리'다. 정책, 사업을 발표할 때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늠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수만개, 수천개 일자리가 매일같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대로 몇 년 가면 대한민국에는 일자리가 넘칠 것도 같다.
과학기술과 연구개발(R&D)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 배분 때 고용영향평가를 실시한다. 기업은 정부 R&D 자금을 지원받을 때 청년 고용을 할당받는다. 그나마 합리타당한 정책들이지만 R&D 이후 고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기존 사업에서 간판만 바꾼 것도 많다.
정부가 국민 요구, 시대정신에 어울리는 정책을 내놓는 건 당연하다. 청년 일자리는 대한민국에서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과열 양상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무조건 맞추는 관료 사회의 특성을 감안해도 정도가 심하다. 구호 홍수 속에 국정철학이 관료화되고 퇴색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창조경제 때도 그랬다. 정책, 사업마다 '창조'를 수식어로 붙이는 게 유행했다. 창조경제 정의가 무엇이냐를 따질 새도 없이 구호가 넘쳤다. 간판 앞에 '창조'를 붙이고 시설 몇 개 세운다고 전에 없던 혁신이 갑자기 꽃피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창조'는 남발됐다. 정체성이 더 모호해졌다.
일자리는 대체로 실체가 분명한 가치다. '좋은 일자리'를 그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속 가능한 고용, 공정한 보상이 뒤따르는 노동이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답하는 것보다 쉽다. 굳이 모든 정책을 '일자리'로 홍보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은 다 안다.
일자리는 정책을 남발할 때보다 좋은 정책 하나를 내놓을 때 더 많이 생긴다. 만약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창조경제 때처럼 '말 잔치'로 도배된다면 국민은 오히려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관료 사회도 탁상공론, 간판 바꾸기식 정책은 지양하자.
과학기술, R&D도 일자리가 나올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엄밀히 따지는 게 먼저다. 그때 고용 창출부터 유지, 순환까지 고민할 수 있다. '정체불명' 논란도 씻을 수 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