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의 위기는 제너럴모터스(GM)의 글로벌 전략 변화가 원인이다. GM 전략 속에 한국지엠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 사브, 독일 오펠, 캐나다 GM 공장 폐쇄 사례를 볼 때 GM은 전략에서 배제한 사업장을 정부 지원금이나 노동조합 양보만큼만 단기 운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M 요구안에서 한국 정부와 노조에 대한 요구는 정부 지원, 차입금 담보 설정, 노조 임·단협 양보가 핵심이다. 그러나 모두 중장기 전망보다는 단기 자본 회수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용 문제에 다른 대안이 없는 한국 정부는 불가피하게 자금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 대안은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전략상이 GM 철수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GM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공장 폐쇄 전문가다. GM이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폐쇄한 공장이 90여개에 이를 정도다. 2008~2009년 본사 파산과 구제 금융 이후 공장 폐쇄가 급증했다.
한국지엠의 흑자 전환은 자구 노력이 아니라 본사 정책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 GM은 정부가 지원금을 주고 노조가 희생하면 조금 더 공장을 가동하겠지만 지원금과 노조 양보가 끝나면 언제든 사업을 정리할 수 있다.
GM이 만약 한국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당장 모든 공장이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오펠을 매각한 GM은 중·소형차 경쟁력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한국지엠 중·소형차 생산 능력과 개발·디자인 능력은 앞으로 몇 년 동안 GM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GM이 소형차 1~2종을 한국에 배정하겠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길어야 3~5년 정도다. GM은 2020년까지 픽업트럭, 크로스오버, 스포츠유틸리티 등 수익성 높은 대형차와 전기자동차·자율주행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에 전사 역량을 집중시키는 구조 조정을 핵심 사업 계획으로 하고 있다. 이 계획에는 한국지엠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GM을 떠나보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현실에 맞는 정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한국지엠이 어떤 지식재산권(IP)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누가 한국지엠을 인수하든 GM이 철수하고 나면 한국지엠은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한국지엠의 중장기 대안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단기로 GM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산업은행의 요구대로 GM 본사로 빠지는 비용이 줄고 현금 지원이 이뤄지면 한국지엠은 몇 년 더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서 GM이 몇 년 안에 철수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지엠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GM을 통한 수출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고용 친화 구조 개혁으로 현재의 90만대 생산 능력을 조정해야 한다.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다양한 사회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
정부 지원 기간에 GM 본사의 미래 자동차 연구개발(R&D) 지원을 끌어내고, 한국지엠 내부에 IP가 남을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짧은 기간에 노조, 정부, 시민사회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런 구상이 실현되려면 노조의 자기 혁신과 포부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한국지엠을 지원하는 것이 GM만 살찌우는 것이 아니려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주체를 기업 내부에서 키워야 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시간을 벌면서 정부 지원금이 한국지엠 미래를 위한 투자금이 되도록 만들고, GM을 견제하면서 스스로 포스트 GM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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