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16>고객의 이름부터 정해야 창업에 성공한다?

성공한 벤처기업가로부터 창업 초창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창업 초기 회사 구성원끼리 고객을 지칭하는 별칭 내지 은어를 사용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을 주 고객으로 창업한 기업은 고객을 '수진이'라고 부르거나, 대입 수험생을 대상으로 교육 사업을 시작한 창업가의 경우, 수능 준비생을 '수능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해외의 성공한 벤처기업 중에서도 제품 기획 초기부터 자사의 핵심 고객을 '제시카' 내지 '로이' 등의 애칭을 사용해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는 창업 초기 사용한 별칭을 회사 공식 용어로 인정하여 회의 내지 사내 공식 문건에서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고객에게 애칭 내지 별칭을 붙이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이는 세계적인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작업 방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한 편의 영화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비중 있는 주연 내지 조연 역할뿐 아니라 대사 몇 줄 없는 단역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영화 거장들은 단 한 컷 등장하는 배역일지라도 해당 등장인물에 대한 별도의 이력카드를 하나하나 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200명이면, 해당 200명 모두의 개인 이력 카드를 별도로 작성하면서 영화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처럼 번거로운 작업을 병행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수행하는 이유는 그래야 영화의 현실감 내지 생동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정인의 어투, 옷차림, 걸음걸이는 일순간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생 발자취가 투영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대사 한 줄만 있는 단역일지라도 해당 단역에 생동감과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어떤 일을 하다 현재 영화 속 장면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대기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해당 대사를 표준어로 구성할지, 구수한 사투리로 구성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의상과 소품도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지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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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효과는 창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그들의 심층적인 부분까지 파악해야 한다. 자사 고객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가상 인물에 대한 이력 카드를 작성해 보는 것도 유효한 방법이다.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다이어트용품을 구상하고 있는 창업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해당 창업가는 가장 전형적인 고객 모습을 갖춘 가상 인물을 설정해 해당 인물에 대한 개인 이력 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난 영희는 중고등학교 시절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입시 준비 때문에 다이어트와 치장은 항상 후순위였다. 고3 수능이 끝나고 난 뒤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약간의 체중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지금은 직장 동료들과 지난 주 결혼한 여직원의 웨딩드레스 등을 화재 삼아 점심시간을 보낸다. 가장 큰 걱정은 자신의 결혼식에 날씬한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지면상의 이유로 개괄적으로 적은 내용이지만, 위의 예시만으로도 우리는 보다 설득력 있는 홍보 문구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세한 고객카드 작성은 고객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쩌면 성공한 창업가들이 고객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특정 고객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떠올렸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치 살아 있는 특정 인물처럼 인식하여 별칭을 붙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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