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완성은 활용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활용하지 못하면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초고성능컴퓨팅(슈퍼컴퓨팅) 역시 마찬가지다. 슈퍼컴퓨터 기술과 사회 전반의 원활한 연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슈퍼컴퓨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특히 활용도가 높다. 많은 양의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연산 능력 부족으로 그동안 어려웠거나 불가능했던 거대 연구개발(R&D), 기업 연구 및 제품 개발, 사회현안 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제시한다. 이를 활용해 애써 구축한 슈퍼컴퓨팅 기반에 가치를 더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제2차 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은 사회 전반의 슈퍼컴퓨터 활용 확대가 첫 번째 목표다. 그동안 일부 분야, 영역에 그쳤던 슈퍼컴퓨터 수혜자를 대폭 늘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1차 기본계획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다. 1차 기본계획 역시 다방면의 지원을 명시했으나, 개인연구자 및 기초연구에만 치중해 효과가 한정됐다. 기술지원 기업 역시 소수에 그쳤다.
2차 기본계획 기간에는 '광범위한 국가 연구개발(R&D) 지원',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 '국민생활문제 해결 지원'으로 슈퍼컴퓨팅 활용 확대에 나선다. 각 분야의 슈퍼컴퓨터 활용 확대로 과학기술, 사회, 산업의 혁신 성과 창출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광범위한 국가 R&D 지원 측면에서는 그동안 슈퍼컴퓨터 기반 활용이 적었던 대형집단연구 지원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슈퍼컴퓨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집단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해 지원 분야를 넓힐 계획이다. 양자기반 화학반응예측, 나노반도체 소자 개발을 비롯해 페타플롭스(PF·1초에 1000조번 연산 가능) 이상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연구주제 발굴에도 나선다. 또 우주개발, 나노기술, 가상 원자로 개발 등 복잡한 중대형 R&D 사업의 경우 기획 내용에 '슈퍼컴퓨터 활용방안'을 포함하도록 해 연구자 스스로 슈퍼컴퓨터 사용에 나서도록 독려한다.
도전적 R&D 연구의 슈퍼컴퓨터 활용도 장려한다. 슈퍼컴퓨터 5호기를 컴퓨팅 자원 부족에 시달리던 도전 과제 연구자를 돕는데 활용한다. 연구 분야별 우선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산·학·연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지원의 객관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바이오·미래소재·대형연구장비·인공지능(AI) 등 대규모 연구데이터를 활용하는 데이터 집약형 연구에도 컴퓨팅 자원을 더 지원한다. 이들 분야에 슈퍼컴퓨터·컴퓨터 연구망 기반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밖에 슈퍼컴퓨터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 및 컨설팅 지원, 슈퍼컴퓨터 관련 커뮤니티 육성 등으로 새로운 슈퍼컴퓨터 활용 R&D를 창출하는 환경 조성에도 힘쓰기로 했다.
김광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 교수는 “슈퍼컴퓨터의 활용 확대는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도와, 차원 높은 응용 연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지원은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S)으로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제품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해주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M&S는 제품 설계 단계를 가상화 해 컴퓨터 연산으로 제품제작과 실험 활동을 대체하는 작업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제조기업 디지털화 진단, M&S 활용 제품 설계 및 개발 지원, 전문 인력 지원 등 기업 맞춤형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또 슈퍼컴퓨터와 지능정보기술을 연계해 선택과 집중 식으로 제조업 디지털 혁신 선도 사례를 창출하는 '그랜드 챌린지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거대 규모의 M&S, 인공지능(AI), 산업 빅데이터 분석 등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한 산업체 수요를 발굴해 기술과 인프라를 집중 지원한다.
제조 기업이 기술 개발, 시험, 분석 등 M&S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확보도 주요 내용이다. 제품개발에 필요한 슈퍼컴퓨터 인프라, 개발 관련 소프트웨어(SW)를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한다. 내년부터 슈퍼컴퓨터 인프라로 국내외 M&S SW 10여종을 온라인 지원한다. M&S에 쓰이는 다양한 '소재·물성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오는 2021년까지 마칠 예정이다.
슈퍼컴퓨터를 제품 개발에 활용해 온 이진욱 코웨이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2차 기본계획 실행이 본 궤도에 오르면 슈퍼컴퓨터 활용을 요하는 많은 기업연구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 해양 환경, 질병 등을 예측해 국민생활문제 해결하는 것도 슈퍼컴퓨터의 주요 역할이다. 특히 기상예측 분야에서는 내년까지 지리·기상 특성을 반영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해 세계 5위 수준의 단기 기상예보 능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중기 예측 모델을 개발해 여름철 장마나 국지성 집중호우, 이상 고온 및 한파와 같은 위험기상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높아진 예측 정확도는 국민생활에 맞닿은 기상예보 서비스 구현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농업이나 기업 종사자에 특화한 스마트 기상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열 스트레스를 비롯한 건강분석 정보를 담은 기상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그동안 연산능력 부족으로 어려웠던 해양 예측정보 제공도 주된 과제다.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해양분야 빅데이터처리, 수치모델링 예측 정보 정확도를 높여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해양수산부가 이미 오는 10월을 목표로 해양분야 슈퍼컴퓨터 활용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해양 영토 관리체계 구축, 해양 안전망 구축, 해양 생태계 변화 대응, 해양 산업 진흥 등이 가능하다.
질병예측 분야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슈퍼컴퓨터 5호기, 첨단 연구망을 활용해 유전체와 대사체 분석 R&D를 추진한다. '한국인 암 유전체 코호트(암환자에 나타나는 공통 유전 특성 데이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암 정밀의학 연구기반 강화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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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