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은 토지 소유자에게 임대료에 해당하는 소작료를 지불한다. 소출이 많아도 이는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며, 소작농은 제공한 노동력에 해당하는 일정한 대가를 받을 뿐이다. 반면에 본인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작농은 소작료를 부담하지 않으며, 국가에 일정한 세금을 내고 나머지 산출된 결과물은 자기가 가져간다. 생산력 증대를 위해 자발 노력을 한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빗대 보면 창업은 자작농, 취업은 소작농으로 볼 수 있다. 헌법에서 '경자유기전' 원칙에 입각해 소작제도를 금하고 있지만 뼈 빠지게 일한 성과의 대부분이 자본가에 귀속된다는 점에서 취업자가 품삯으로 연명하는 과거의 소작농과 다를 바 없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015년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대중창업 만민혁신'의 경제 발전 방침을 제창한 이후 중국 전역으로 창업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고도 성장기를 끝내고 중속 성장을 의미하는 '신창타이' 시대에 진입하면서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각종 규제 개혁과 지원 확대를 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중국에서는 2016년에 552만8000개의 기업이 탄생했다. 하루 평균 1만5000개 수준으로, 3년 전에 비해 2.2배 증가한 수치다. 2010년에는 전체 대학 졸업생 가운데 약 1.7%인 11만명이 창업했지만 2016년에는 62만명으로 증가했다. 중국에서는 창업을 하지 않고 취업하는 것을 창피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번성한 시기에는 자작농 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주인 없는 땅을 개간해서 이를 통해 자작농 비율이 높아지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세금 수입이 증대되며, 일자리가 늘었다.
세종대왕 치세 기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다고 평가한다. 의료, 천문, 과학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일궈 낸 세종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의 먹거리 문제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은 조선의 기후와 토지에 맞는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고, 민생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 경작지 개간에도 힘을 쏟았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재위 초년부터 간척지 등을 활용해 농지를 개간하는 자에게 각종 혜택을 베풀었고, 개간지 소유권과 이용권에서 파격 조치를 취했다.
재위 2년에는 토호 세력이 서류로만 차지하고 있는 황무지를 농민이 개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세종 10년에는 전라도의 묵은 황무지가 전부 개간·경작됐다는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두 차례의 외환 위기로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많은 기업이 쓰러졌다. 많은 자작농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위험을 기피하고 창의성 도전을 꺼리는 소작농으로 돌아서게 됐는지도 모른다.
공무원 시험 광풍과 대기업 입사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라는 현실이 대변하듯 스스로 자작농의 길을 포기하고 소작농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자작농 육성을 통해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강화를 도모한 과거 선조들과 같이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주체가 창업에 도전해 국가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대학 실험실 창업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이공계 대학원생·교원 등 우수 인력들이 창업의 주체가 되고, 바이오·에너지·나노 등 다양한 실험실이 보유하고 있는 우수 기술을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이 만들어지도록 대학과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자작농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저력이 축적된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창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을 못하는 사람이 취업을 하는 시대, 자작농이 다시 활개를 치는 창업의 태평성세를 꿈꿔 본다.
공득조 GIST 미래연구센터 사업화전략팀장 dukjokong@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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