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연구개발(R&D) 로드맵 'I-코리아 4.0'은 R&D 패러다임 변화 신호탄이다. 정부가 아닌 연구자(기관·기업) 중심 R&D는 글로벌 산업 트렌드 '개방'과 '공유'와도 맥을 같이 한다. 연구자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간 참여를 늘리는 개방형 R&D 체계 도입으로 투자 효과 극대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ICT R&D 문화 정착이 기대된다.
◇ICT 기술혁신, 한계에 봉착
197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설립 이후 40여년간 우리나라 ICT R&D는 '정부 만능주의' 혹은 '정부 간섭주의'로 표현된다.
정부가 문제점을 파악해 산업과 시장 발전방향을 결정했다. R&D는 톱-다운 하향식 기술혁신 방식을 고수했다. 정부가 설정한 목표를 구현하는 게 연구 목적이었다. ICT 수준이 낮고 산업 규모가 작은 시절에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민간 급성장으로 이 같은 방식은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 민간 ICT R&D 투자는 2011년 19조6000억원에서 2015년 27조원으로 약 38%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정부 투자는 9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제자리걸음이다.
정부 주도 하향식 기술혁신은 시장과 기술 다양성 수용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우리나라 공공 R&D 특허 기술 이전율(2014년 기준)은 17.6%로 76%인 유럽연합(EU)과 44.7%인 미국에 크게 뒤처진다.
낡은 연구방식은 도전·창의적 연구활동도 저해한다. 2016년 정부가 연구기관 연구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연구혁신을 저해하는 요인 1위로 '불합리한 관료주의'가 꼽혔다.
김광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정부가 과제를 선정해 연구업체에 넘기는 방식으로는 창의성을 유도하고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기가 어렵다”며 “산업 발전에 맞춰 ICT R&D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를 연구 중심으로
'I-코리아 4.0'은 기존 ICT R&D 과제 기획과 선정,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게 핵심이다. 종전에는 ICT R&D 필요 분야를 정부가 선정하고 해결 방식도 정부가 기획했다. 사업 일정을 계획하고 예산을 확보·할당하는 것도 정부 몫이다. 연구자는 사업을 수주해 기술개발만 하면 된다. 정부가 정한 목표대로 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된다.
'I-코리아 4.0'에서는 공공 또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통합기획위원회가 특정 주제에 따라 문제를 설정한다. 정부 역할은 여기까지다.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예산은 연구자가 제안,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일부 분야에서 적용 중인 '자유 공모형' 방식과 비슷하지만 이를 더 강화하고 적용 분야를 확대한다.
'I-코리아 4.0'에서는 연구자 창의성·자율성 확대를 위해 이외에도 다년도 협약, 연구비 정산 면제 범주 확대, 매년 행정규정 5% 의무 개선 등 수행관리 간소화를 추진한다. 컨설팅 중심 평가 등 평가방식 다각화로 연구자 평가 부담도 완화한다.
전문연구실 도입도 주목된다. 평균 연구연수 3년인 현 ICT R&D 지원 체계를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애써 개발한 기술 사장을 막고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을 축적하기 위한 조치다. 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개편을 최소화하고 연구 주제는 탄력 변경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삶의 질 개선에도 일조
'I-코리아 4.0'에는 사회 현안 해결과 국민 삶의 질 개선에 ICT 활용도를 높이려는 목적도 담겨 있다. 과거 ICT R&D 1차 목적은 산업 육성 지원이었다.
과기정통부는 사회문제 해결 ICT R&D 투자를 2018년 12.5%를 시작으로 2019년 30%, 2022년 45%로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도시(재생), 교통(혼잡 개선), 복지(사각지대 제거), 환경(미세먼지 저감), 안전(범죄·사고 예방), 국방(경계감시시스템 개선) 등 6대 분야 문제를 집중 해결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ICT로 주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게 'I-코리아 4.0' 전략 목적 중 하나”라고 밝혔다.
〈표〉사회문제 해결 ICT 신규투자 확대 목표
〈표〉정부와 민간 ICT R&D 투자 규모(단위:조원)
〈표〉공공 R&D 특허의 기술이전율(2014년 기준)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