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3>“가상화폐 생태계 조성해야”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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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회장은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규제만 하면 4차산업혁명 대열에서 탈락한다”고 강조했다.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가상화폐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기술과 제도의 충돌이다. 정부 규제를 놓고도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정부의 가상화폐 방침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지난 18일 21만9000명을 돌파했다. 가상화폐를 보는 시각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오정근 한국금융ICT학회장(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을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자실에서 만나 가상화폐 대책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국은행 출신 경제학자로,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섭렵한 융합형 학자다.

오 회장은 “가상화폐 열풍은 기술 혁신과 통화 제도 변경이라는 문화 전환기 현상”이라며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도화해서 건전한 가상화폐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회장은 “우리가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규제만 하면 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탈락한다”면서 “가상화폐 실체를 인정하고 거래실명제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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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 혁신과 통화 제도 변경이라는 문화 전환기 현상이라고 본다. 가상화폐는 정부가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미 가상통화는 일부 국가에서 기존 화폐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실체가 없다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하루 거래자가 300만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30대가 절반이다. 하루 거래액이 6조원이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서 실체를 인정하고 거래실명제 실시 및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그동안 손 놓고 있다가 논란이 되자 느닷없이 거래소를 폐지하거나 거래를 규제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가상화폐 관련 용어가 혼란스럽다. 어느 게 맞는가.

▲현재 가상화폐를 비롯해 암호화폐, 디지털화폐로도 불린다. 용어가 다소 혼란스럽지만 같은 의미다. 가상화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사용하는 용어다. 정부도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쓴다. 암호화폐라는 말은 업계에서 주로 사용한다. 디지털화폐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사용한 용어다. 과거 디지털 기술 혁명이 일어날 때도 디지털 화폐가 있었다.

-화폐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화폐 발전사를 보면 처음에는 상품을 주고받았다. 물물교환 시절에는 상품이 화폐였다. 이게 금속화폐로 변했다. 금과 은을 주고 물건을 구매했다. 조선시대에 우리는 엽전을 사용했다. 이후 법정 화폐가 등장했고, 디지털 화폐가 나타난 것이다. 화폐는 거래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디지털 기술 혁명으로 우리 삶이 급변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는 폴더폰을 사용했다. 폴더폰은 통화만 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내놓자 컴퓨터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양방향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화폐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가상화폐 거래는 디지털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모바일 혁명에 가장 적합한 통화가 가상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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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의 장점은 무엇인가.

▲언제나 양방향 거래를 할 수 있고, 안전하다. 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거래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중앙 결제 기구가 필요 없다. 이것은 금융 민주화 시대를 예고하는 현상이다. 지난날 어음을 사용하던 시절에 어음결제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금융결제원이 있다. 가상화폐의 등장 의미는 탈(脫)중앙화다.

-정부 대응은 적절한가.

▲정부가 규제 일변도로 가는 것은 마치 1800년대 영국에서 마차업자들이 자동차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차량 속도를 제한한 '적기조례'의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 30년 동안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들고 일정 속도 이상을 달리지 못하게 했다. 그런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 자동차 산업을 독일에 빼앗기고 말았다. 가상화폐도 투기와 범죄는 단속하되 산업 자체를 규제하면 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낙오할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에 만약 인터넷 공간의 그림자만 보고 규제만 했다면 오늘날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되지 못했다. 신기술 개발에 인색한 국가는 선두가 되지 못한다. 하루 빨리 가상화폐의 성격을 규정하고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범죄나 투기 세력은 처벌하고, 관련 산업은 육성 및 진흥해야 한다. 우리가 육성은 하지 않고 규제만 하면 금융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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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거래 단속의 방침은 어떻게 보는가.

▲청년들은 ICT 강국 대한민국의 디지털 원주민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놀았다. 이에 비해 50~60대 장·노년층은 디지털 이주민이다. 창조나 혁신은 젊은이가 이룩했다. 청년들은 몇 해 전부터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 뛰어들었다. 나이 든 사람은 새로운 걸 내놓지 못한다. 열아홉살에 이더리움을 개발한 세르게이 브린은 열네살부터 게임을 하고 놀았다.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한국에도 그런 젊은이가 많이 나와야 한다. 디지털 원주민 청년들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면 기성세대가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청년이 미래를 이끌 주역이다. 가상화폐 투자를 투기로 판단하고 청년으로 하여금 못하게 하는 건 잘못이다. 창조나 혁신을 하지 못하게 막는 일과 같다.

-거래소를 폐지하면 거래를 하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면 젊은이는 해외로 나갈 것이다. 지금은 해외 시장에서 얼마든지 거래할 수 있다. 국내 거래를 막는다고 해서 해외 거래를 못하는 게 아니다.

-현재 가상화폐는 몇 종인가.

▲1350여종이다. 실제 시중에는 600여종이 거래된다. 나머지는 시장에서 퇴출됐다. 가상화폐는 채굴해야 한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외국에는 가상화폐 공개를 통한 자금 모집(ICO)을 한다. 연도별 개발 계획서를 발표하면 개발 가능성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요 여부를 판단해서 투자한다. 잘못하면 망하는 위험성도 있다. 지금 거래하는 가상화폐도 2~3년 안에 절반 이상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 살아남는 가상화폐가 글로벌 통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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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개발한 가상화폐도 있는가.

▲몇 종 있다. 그러나 거래는 많지 않다. 시장에서 수요가 없으면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찾는 가상화폐를 개발해야 한다.

-가상화폐를 인정하는 국가는 어디인가.

▲미국은 이미 선물거래소에 비트코인을 상장시키고 법정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 경제 거래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인정하고 가상화폐에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과세하고 있다. 거래소에 등록제를 도입, 가상화폐가 수천개 업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 자동입출금기(ATM)도 수백대다. 스위스는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인구 2만명인 추크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방한 크립토밸리를 만들었다. 이곳에 기업을 설립하려면 '연봉 1억원 이상의 현지인 3명 고용' 같은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아무런 규제가 없다. 세계 가상화폐 절반이 추크에서 가상화폐공개(ICO)를 했다. 세계 금융 중심 도시는 미국 뉴욕이나 싱가포르, 홍콩 등이다. 2013년 영국에 갔더니 그때 가상화폐 문제가 연구되고 있었다.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도 암호화폐 권장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법정 화폐를 가상화폐가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는 세계 각국이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했다.

▲일시라고 생각한다. 중국 가상화폐는 세계 수준이다. 중국은 사전 허가, 사후 규제 방식이다. 일단 시작하고, 문제가 있으면 고친다. 우리와 반대다.

-이 문제를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제도화해야 한다. 건전한 가상화폐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거래소는 해킹 방지 시설과 고객 신원 확보, 자금 세탁 방지 같은 자격 요건을 갖춘 곳만 허가해야 한다.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면 투자 안정성도 보장할 수 있다. 가상거래소 성격을 규정하고 거래소 요건 등을 담은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가상화폐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영세한 업체는 다단계 판매도 한다. 해킹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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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 블록체인 같은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화폐, 블록체인, 개인간거래(P2P)는 한 묶음이다. 삼위일체다. 어떤 것은 규제하고 어떤 것은 육성한다는 건 이해 부족에서 나온 발상이다. 이젠 공직자도 전문가를 채용해야 하는 시대다. 지금은 순환 보직이다. 미국은 민간 분야에서 최고 인사에 속하는 사람이 공직을 맡는다. 우리도 스위스처럼 제주도나 송도 같은 지역에 가상화폐 밸리를 조성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가상화폐는 옥석을 가려서 투자해야 한다. '묻지 마'식 투자는 안 된다. 학교 교육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이제는 융합 시대에 걸맞은 융합 교육을 해야 창의 인재를 기를 수 있다. 컴퓨터와 금융을 다 알아야 하는 시대다.

-학회 차원의 계획은.

▲주식은 애널리스트가 있어 종목을 분석하고 추천해 준다. 앞으로 가상화폐 투자자를 위해 애널리스트를 육성할 계획이다. 그렇게 하면 투기나 묻지 마 투자는 사라질 것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학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외환연구팀장,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동남아중앙은행 조사국장, 고려대 경제학 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아시아금융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건국대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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