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삼성 위기론과 삼성의 DNA

삼성 위기론이 삼성 최고 경영층에서 또다시 나오고 있다. 사상 최고의 경영 실적을 내고 있는 한가운데서다. 삼성그룹은 여전히 한국 경제를 이끌며 잘나가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수치는 무역 흑자와 주가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납세, 고용, 연구개발(R&D) 등을 넣으면 더욱 확연해진다. 삼성을 보고 한국 경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이른바 '삼성착시론'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삼성위기론은 잘나갈 때 이미 실패가 시작된다고 경계하는 '실패 내재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삼성 DNA를 구성하는 요체이자 삼성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나 삼성이 이런 위기론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진짜 위기이기 때문이다. 회장과 부회장이 '부재중'이며, 최고위 경영진이 대거 사퇴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삼성이 아무리 시스템의 삼성이라고 하지만 경영 모멘텀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삼성위기론은 직원을 향한 게 아니다. 경영 간부들의 정신 무장을 위한 회장의 메시지였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경계와 신중'을 핵심으로 한 위기론을 끊임없이 펼쳤다. 대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삼성위기론을 '간부 자격론'과 결부시켰다. 여기에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이 출발했다.

1993년 3월 그룹 임직원을 대동하고 일본 도쿄에 온 이건희 회장은 철야 회의를 하면서 간부들에게 일본 속담 하나를 소개했다.

“바람이 불면 물통 장수가 돈을 번다.” 내용인즉 이렇다. “바람이 불면 길에서 흙먼지가 인다. 흙먼지가 일면 눈병이 창궐, 장님이 많이 생긴다. 장님들은 먹고살기 위해 악사가 돼 샤미센(기타 모양의 세 줄짜리 현악기)을 연주한다. 샤미센의 울림통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 고양이를 많이 잡게 되니 반대로 쥐가 늘어난다. 쥐는 이빨이 자라나기 때문에 집안이나 목욕탕에 있는 나무통을 갉는다. 나무통이 자주 망가지니 통장수가 돈을 벌게 된다.”

의료 기술도 신통치 않고 플라스틱 물바가지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는데 이처럼 명쾌한 이야기는 없을 듯 싶다. 이건희 회장은 왜 이 속담을 꺼냈을까. 이건희 회장은 '간부 자격론'과 이 속담을 연계시켰다. 다시 말해서 삼성의 간부가 되려면 사물의 현상만 보지 말고 전후관계, 즉 인과관계를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로부터 석 달 뒤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더 큰 규모의 임직원 회의를 열었다.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한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바로 이때 나왔다. '외형 경영'에서 '내실 경영'으로 완전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자식과 마누라를 빼고 모조리 바꿔라'는 삼성 혁명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회의, 3월 도쿄 회의,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로 이어진 '93년 혁명'은 이건희 회장이 회장 취임 5년 후인 1992년 들어와 삼성이 무너질 것 같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오랫동안의 고독 속에 준비한 혁명이었다.

'물통 장수' 속담은 삼성을 일찌감치 가치사슬(밸류 체인) 경영으로 전환시켰고, 전사자원관리시스템(ERP)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생산자 위주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는 상업 전환기를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고 간부들을 인과관계론으로 훈련시킨 것이다.

세계는 기술 전쟁, 기업 전쟁 시대를 넘어 기술 패권을 노리는 국가들의 총성 없는 전쟁 시대를 맞고 있다. 예전처럼 시장이 계속 커지고, 성장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기업들이 아예 없어지거나 반대로 지수함수로 급성장하는,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등과 같은 빼어난 경영 거물들이 매일같이 자신들의 경영론을 쏟아낸다. 예측과 전망을 겸한 21세기 경영론의 대홍수 시대다.

삼성이야말로 잘나가는 이때가 삼성위기론과 간부자격론의 역사를 되새기며 자신의 DNA를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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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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