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단말기 자급제, 지금도 제도는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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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소비자 90% 이상이 이동통신사에서 휴대폰을 구입할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 그러나 제조사와 대형 유통점 등 시장 참여자의 의지에 따라 단말기 자급제를 시행할 조건을 갖췄다. 제조사 출시 단말의 20%는 특정 이통사 전용이 아닌 자급제용 단말이다. 제조사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마켓,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통해서도 자급제폰을 구매할 수 있다.

정부도 이통 서비스와 단말기 판매 시장을 분리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단말기 자급제가 활성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술 방식 때문이다.

옛 정보통신부는 1996년 2세대(2G)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상용화 초기에 유심 없이 휴대폰 내부에다 이용자 식별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술상으로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 구입을 동시에 하도록 강제한 셈이다. 시장 초기부터 이통사가 유통 주도권을 쥐게 된 시장 구조가 20년 넘게 고착화됐다. 반면에 유럽과 중국은 이통 초기 시장부터 이용자 식별 정보는 유심(USIM)에 저장, 단말기와 판매를 분리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단말기와 서비스 시장이 분리됐다.

정부는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3세대(3G)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방식을 상용화하면서부터 글로벌 표준에 따라 유심을 도입했다. 이후로 서비스와 단말기 시장 분리 정책을 본격화했다.

옛 방송통신위원회는 2008년 3G 유심 록 해제 의무화를 통해 사용하던 유심을 타 이통사 단말기에 장착하더라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방통위는 2012년 '단말기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했다. 외산 또는 제조사에서 개별 구입한 단말기 등 이통사에 식별번호(IMEI)를 사전 등록하지 않은 단말기를 대상으로 사후에 등록, 통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그 결과 중고·외산 단말기 등도 이통사 전산 시스템에 자유롭게 등록,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옛 미래창조과학부는 2014년 모든 롱텀에벌루션(LTE) 단말기에 유심을 꽂는 것만으로 이용자 식별이 가능하도록 하는 'LTE 유심 이동성 제도'를 의무화했다. 이용자가 개통한 LTE 단말기를 다른 이통사로 옮겨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다.

미래부가 2014년에 시행한 이통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도 단말기 자급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지가 담겼다. 이통사에서 단말기를 구입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선택약정할인' 혜택을 제공, 타 유통망의 단말기 판매 활성화를 추구했다.

자급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강제로 이통사 단말기 판매를 금지하는 방식보다 시장 선택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업계 관계자는 “현 제도에서도 제조사와 전문 유통점이 휴대폰 판매 시장에 진출할 길은 열려 있다”면서 “혁신형 자급 단말기 출시와 동시에 기존 이통사가 조직해 놓은 유통 채널이 아닌 온라인 등 새로운 유통 채널이 등장해서 시장 구조를 흔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