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개념·차별화 건너뛴 '성과중심' 혁신성장…“5년 내 성과 집착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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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연내 각 부처가 새롭게 내놓을 주요 정책만 14개에 이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부처 수장들은 연일 혁신 성장을 강조하며 업계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성과와 실리에 초점을 맞췄다. 혁신 성장 개념 정립, 역대 정부 정책과의 차별화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이다. '현실 선택'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청사진 없이는 방향을 잃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5년 임기 내 성과가 나타나는 보여 주기 식 정책만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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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시작된 혁신 성장 정책

정부는 지난 7월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에서 사람 중심 경제 구현을 위한 핵심 축 네 가지를 발표했다.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경제, 혁신 성장 추진으로 저성장·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도 예산·세제를 개편하면서 혁신 성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경제 정책 중심이 지나치게 '분배'에 쏠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도 “메시지 전달이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최근에서야 혁신 성장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 부총리는 벤처기업 등을 잇달아 방문, “혁신 성장을 잘 챙기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달 경제 관계 장관 회의 후 정부는 앞으로 발표할 총 15개 혁신 성장 정책 목록을 공개했다. 연내 '혁신 창업 종합 대책' 등 14개 정책을 발표, 내년에 '규제 샌드박스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

지난 10일 김 부총리는 벤처기업과 가진 간담회에서 혁신 성장 관련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듣는 '핫라인' 운영 계획을 발표, “기업의 혁신 성장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개념·차별화 건너뛰고 '성과 중심'으로…평가는 엇갈려

정부는 혁신 성장 작업을 본격화하면서도 '청사진'은 내놓지 않았다. 혁신 성장 정의도 명확하게 내리지 않았다.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부문, 혁신 성장은 공급 부문을 각각 담당하는 경제 정책 양대 축'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앞으로도 개념과 지향점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은 없다. 지난 정부 때 '창조경제' 개념 정립 과정에서 혼란·낭비가 있은 점을 반면교사 삼아 혁신 성장은 세부 사업, 성과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혁신 성장 개념을 별도로 정립한다고 해서 부가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체험을 통해 국민이 '이것'이라고 알게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혁신 성장 개념 정립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면서 “그럴 동안에 실제 결과물을 일궈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형권 기재부 1차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혁신 성장 개념 정립 필요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는 개념, 프레임보다 성과를 내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런 방향을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개념 정립, 차별화에 공을 들이다가 정작 사업에 소홀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반면에 청사진 없이는 사업이 중구난방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가 그랬듯 어느 분야에든 '혁신'을 붙이면 다 '혁신 성장' 사업으로 둔갑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소식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처음에는 혁신 성장 개념 정립과 함께 어떻게 차별화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한 것으로 안다”면서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로드맵 없이 체계를 갖춘 정책 추진이 가능할지는 솔직히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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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은 벤처기업과 간담회에서 “기업의 혁신성장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5년 내 성과, 집착 버려야…대기업 참여 필수

전문가들은 정부의 혁신 성장 정책이 '가시 성과' 중심으로 흘러갈 것도 우려했다. 중장기 시각에서 혁신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보다 5년 임기 내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는 사업 위주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한 정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장기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성과 중심의 혁신 성장 정책은 5년 안에 무언가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역대 정부가 겪은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혁신 성장 정책이 '기술'이 아닌 '창업·일자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4개 핵심 경제 정책(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경제, 혁신 성장)이 각각 제자리를 지켜야 함에도 혁신 성장이 일자리 중심 경제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혁신 성장이 성공하려면 중소·벤처기업은 물론 대기업 참여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정부가 '공정경제'를 강조하며 대기업 중심으로 감시망을 강화하고 있어 원활한 협력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최근 김 부총리가 “대기업도 혁신 성장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밝혀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 부총리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많이 언급되면서 대기업 관련 메시지가 다소 적었다”면서 “앞으로 (대기업에) 기운을 주는 메시지를 많이 내겠다”며 힘줘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혁신 성장에 적극 나설 때 정부 정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정부가 대기업의 투자, 신사업 개척을 독려할 수 있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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