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 귀에 자주 들리던 극동(Far East)이라는 말이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아마도 지난 2009년 12월 홍콩에서 발행되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이하 '파 이스턴')가 63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폐간할 때부터 시작된 것 아닌가 추측된다. 아시아 지역의 주간 영문 경제지를 대표하던 파 이스턴은 경영난에 부닥쳐 2004년 월간지로 전환, 회생을 꾀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1997년 홍콩 반환과 2001년 중국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눈부신 약진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오히려 변방의 파 이스턴이란 이름이 잊혀 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잠시 세계 지도를 보자. 종래의 유럽 문명권에서는 유럽보다 동방에 있는 곳을 '근동'과 '극동'으로 크게 나눴다. 19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획득 경쟁에 나서면서 '중동'이란 지역이 첨가됐다. 그때 근동은 터키에서 이집트에 걸친 지중해 동쪽 지역, 중동은 아라비아반도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티베트까지 이르는 지역을 각각 일컬었다. 극동은 그보다 더 동쪽 지역이면서도 필리핀보다 위에 있는 지역으로 여겼다. 한국, 일본, 대만이 포함된다. 중국은 땅이 넓어 극동으로 분류하기엔 무리지만 베이징에서부터 홍콩에 이르는 동부 지역은 엄연히 극동으로 보았다. 중국이 극동 국가로 여겨진 이유다.
이러한 극동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를 발신하고 있다.
세계의 눈은 지난 18일 시작해 24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공산당대회에 쏠리고 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시점에 열리고 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안전 보장의 권력 균형을 좌우하는 정치 이벤트다. 이번 제19회 당 대회가 주목 받는 것은 무엇보다 시진핑 총서기의 독재 체제가 확립될 것인가 여부다.
수많은 전문가 분석을 정리하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당 규약에 들어 있는 시진핑의 지도 이념이 '시진핑 사상'으로 새로 쓰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1982년에 폐지된 최고의결권을 쥔 '당주석' 제도가 부활할 것인가 여부다. 셋째는 '차이나 세븐'으로 불리는 당의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인사 행방이다.
현재 당 규약 종합편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 사상', 후진타오의 '과학 발전' 등과 같은 과거 공산당 지도자들의 지도 이념이 들어가 있다. 공식 이름을 붙인 것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뿐이다. 시진핑이 대번에 마오쩌둥급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주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음을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22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는 집권당 자민당의 압승이 확실시된다. 아베 신조 총리를 둘러싼 스캔들로 총리의 정치력 약화를 돌파하기 위해 실시한 의회 해산 뒤의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함으로써 아베 총리의 '1강(强) 정권'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도쿄올림픽 성공을 외치며 '난국 돌파 선거'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국민들에 제대로 먹혀든 형국이다.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골치 아픈 북핵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일자리 문제를 포함한 많은 경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20일 나온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원전 공사 재개 권고안을 합리에 맞게 처리하면서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에너지 정책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야당과 협력, 정국을 안정시켜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양 저편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5일부터 극동의 세 나라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한다. 그의 이번 3국 방문은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의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동 방문을 계기로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의 지정학상의 안정을 끌어내 새로운 극동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중국과 일본은 강력한 리더십 아래 정국 안정 속에서 경제 발전을 꾀해 나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문재인 정부의 글로벌 시각, 정국 안정을 위한 리더십, 국가 발전 전략이 긴요하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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