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도 비정규직 '희망고문'...'공개경쟁' 쟁점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암초를 만났다. 새로 생기는 정규직 자리를 기존 인력이 아닌 외부에도 개방하는 '공개 경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존 비정규직은 오히려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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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4일로 예정된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브리핑을 취소했다. 앞으로의 브리핑 일정은 확정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연구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추가로 필요해 연기됐다”고 해명했다.

과기정통부 가이드라인은 출연연의 정규직 전환 직무 범위, 상시·지속 업무 판단 기준 등을 포함한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출연연은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전환심사위원회를 가동, 정규직 전환 범위·규모·일정을 수립한다. 가이드라인 수립이 연기되면서 개별 출연연의 전환 작업도 미뤄졌다.

과기정통부가 밝힌 표면상 이유는 '연구 현장 의견 수렴'이다. 연구 현장, 즉 출연연에서 애초 가이드라인 초안과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는 뜻이다.

과기정통부는 고용부가 정한 '연중 9개월 이상 지속, 향후 2년 이상 지속 예상 업무'에 '재계약 선례가 있는 업무'까지 전환 범위에 포함시킨 초안을 마련했다. 현재 출연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기본 방침이었다.

가이드라인 수립 과정에서 '공개 경쟁' 도입 목소리가 나왔다. 내부 비정규직을 그대로 정규직화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취업 희망자까지 포함해 경쟁 심사에 올리는 게 골자다. 기존 비정규직은 내·외부 경쟁자를 제쳐야 정규직 자리를 얻는다. 경쟁에서 밀지면 오히려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정규직화'보다는 '신규 채용'에 가까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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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연구기관의 특수성이다.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전문 인력은 일반 직무와 달리 최신 성과, 연구 경쟁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숙련 인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출연연은 공개 경쟁 폭을 최대한 늘리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자율성, 연구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도 애초 공개 경쟁을 허용하지 않다가 최근 논의에서는 불가피한 경우 허용하는 쪽으로 전향했다. 공개 경쟁 폭과 기준을 놓고 '수위 조절'을 고심하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장 요구 사항과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부득이하게 공개 경쟁이 필요한 측면이 있어 추가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연구 현장 주장을 최대한 받아들이면 정책의 취지가 훼손된다. 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도 맞지 않다. 반면에 '내부 인력 전환'을 강행하면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다른 분야 정규직 전환이 지지부진한 것도 악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인천공항공사는 전환 과정에서 잇단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안검색 노동자 배제, 외주업체 계약 해지를 두고 노·사 갈등이 불거졌다.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기정통부마저 '눈치 보기'에 들어가면 장기 표류가 우려된다.

출연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공개 경쟁 도입이 확실시되면서 비정규직 반발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커진 정규직 전환 희망이 '반쪽'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출연연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퇴직한 연구원은 “지금까지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출연연 연구에 기여한 바를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내부 연구원은 프로젝트 위주, 외부 인력은 논문·특허 위주로 각각 일하기 때문에 공개 경쟁에서 공정한 평가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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