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여금과 중식비도 통상임금"…법원, 4223억 지급 명령
법원이 기아자동차 근로자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사측이 근로자에게 3년 치 밀린 임금 4223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는 노조 측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이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계 현안이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노조에 유리한 선고 결과가 나오면서 기아차 노·사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노조 측이 요구한 정기상여금, 중식비, 일비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기아차 측이 2011년에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에게 지급할 추가 금액으로 원금 3126억원, 지연이자 197억원 등 총 4223억원을 인정했다. 이는 노조 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의 38.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재판부는 기아차 측이 주장한 경영상 어려움에 대해선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봤다.
기아차가 2008~2015년에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당기 순손실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같은 기간에 매년 1조~16조원의 이익을 거뒀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이제 지급하면서 중대 위협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는 물론 재계 전반에서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국내 자동차 업계가 결국 통상임금이라는 '폭탄'까지 받아들게 됐다”고 우려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그동안의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 합의와 사회 관례, 정부의 행정 지침, 기아자동차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막대한 악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판결에 유감이라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냈다.
기아자동차는 1심 재판에서 소급 지급 선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항소 의사를 밝혔다.
기아차 관계자는 “청구 금액 대비 부담이 감액되기는 했지만 현 경영 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항소심에서 적절한 판단을 기대한다. 1심 판결이 앞으로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반발했다.
반면에 기아자동차 노조 측은 “1심 판결이 노동자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 소송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완성차 업계는 물론 다른 산업계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겪은 100인 이상 사업장은 전국 192개다. 이 가운데 115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