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부채의식(負債意識)과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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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송곳니, 전갈, 늑대.'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일본을 공포로 몰아넣은 기업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지른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 산하 부대의 이름이다. 이름만으로 섬뜩하다.

이들은 1970년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폭탄 테러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1974년 10월 14일 미쓰이물산 테러를 시작으로 1975년에는 극에 달했다. 테러는 이듬해 초까지 이어졌다.

타깃은 그들이 '일제(일본 제국주의)의 중추에 기생하면서 죽은 고기를 뜯어먹는 집단'으로 규정한 대기업이었다.

이들은 기업과 자신에게 '일제 본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물었고, 대가를 지불하기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 방법이 기업 폭탄 테러였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시민도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교도소에 갇혔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나와 “문제의식은 옳았으나 행동이 잘못됐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재미있는 해석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살아 있는 과거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 사람들에게 이들의 테러가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면죄부는 두 가지 사고로 갈린다. 하나는 '대가를 지불'하는 행동과 문제의식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가를 지불하려는 문제의식이 결국 폭탄 테러로 이어짐으로써 문제의식까지도 정당성이 부정 당한 것이다.

테러라는 극단의 방법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일제 만행을 겪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전범 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이와 함께 폭탄 테러가 없었다면 일본이나 일본 기업이 아직까지 잘못된 행동에 부채의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제국주의 주역이던 일본 기업과 직접 비교는 안 되지만 2017년 현재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현실이 1970년대 일본 테러 집단이 기업을 바라보던 시각과 오버랩 된다.

재벌로 표현되는 국내 대기업의 고속 성장에는 노동자의 희생, 국민의 배려, 정권의 특혜 등이 버무려져 있다. 우리 사회에 있는 반 기업 정서 역시 이런 배경에 뿌리를 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있다. 잘못된 기업 문화나 경영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런 움직임에 많은 박수를 보내지만 안타까운 것도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일자리 창출 등 기업이 일궈 낸 사회 역할에 대한 인색한 평가다. 기업의 가장 큰 덕목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재계가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내세우는 논리지만 틀리지는 않다.

최근 통상임금 문제나 최저임금, 대기업 총수 재판, 각종 규제 강화 등 기업을 압박하는 일련의 변화가 일고 있다. 필요한 방향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그러나 사회 압력이나 정치권력 등의 강한 힘에 의한 문제 해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 스스로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고 긍정적인 역할은 키워 가야 한다. 스스로 변해야 하고, 우리는 기업에 그 기회를 줘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 간 관계나 협상에서 가장 상수(上數)는 상대방에게 부채의식이 들게 하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심어주되 부채의식은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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