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전 국민의당 대변인이 탈당계를 제출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 전 대변인은 1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탈당의 변"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 10일 국민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습니다"라며 먼저 소식을 알린 뒤 "좌절감과 낭패감이 컸습니다. 긴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고심한 결과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민의당에서 저의 소임은 끝났습니다"라며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당이 분열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저의 작은 소임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처음 받아본 당헌과 강령 초안은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의 명칭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만든 초안은 대북정책에 이르러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며 신당 창당을 계획할 때를 회상하기도 했다.
김 전 대변인은 또 "당의 시스템은 당시 새누리당의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당개혁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라고 지적하기도.
김 전 대변인은 글의 말미에서 "이 글은 저 개인의 순수한 생각이며, 지금까지 제가 함께 해온 ‘그 분’의 뜻과는 무관함을 밝혀둡니다", "이제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금연의 대열에 함께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피차 쉽지 않을 듯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희경 전 대변인의 글 전문>
'탈당의 변'
지난 10일 국민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습니다.
좌절감과 낭패감이 컸습니다. 긴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고심한 결과입니다. 지난 2015년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한 동지들께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의당에서 저의 소임은 끝났습니다.
저는 최근까지 존폐의 위기에 놓인 국민의당을 살리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제3세력의 가치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해 국민의당을 제3세력의 중심정당으로 재건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토론해왔습니다. 그러나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당이 분열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저의 작은 소임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의당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에 그만큼 낭패감도 큽니다.
저는 2015년이 저물기 시작할 때 처음 신당 창당 계획을 만들고, 말석에서 실행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겼습니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변화하는 민심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당을 함께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힘겨루기 과정에서 이탈하는 동지도 있었고, 노선을 둘러싼 작은 소동도 있었습니다. 처음 받아본 당헌과 강령 초안은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의 명칭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만든 초안은 대북정책에 이르러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늘 역사의식이 문제였습니다. 당의 시스템은 당시 새누리당의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당개혁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민주당 시절부터 함께 한 의원들이 나서서 하나하나 바로잡았습니다. ‘이승만 국부론’ 발언은 한껏 달아올랐던 창당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수도권에서 탈당을 준비하던 분들이 정체성을 문제 삼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빨리 수습하자고 제안했으나, 망설이는 바람에 사태는 커졌고, 결국 누군가 나서서 사과까지 해야 했습니다.
나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리더십을 배웠습니다.
신당의 설계자는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선주자를 배려했고, 영입인사를 먼저 내세웠습니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으나, 그는 자리보다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총선 공천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이든 대표직을 맡아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그는 쿨하게 처신했습니다. 그가 강조해온 ‘나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리더십’을 경험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총선 전략을 둘러싼 갈등은 책임정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통합이냐, 연대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포장된 것입니다. 핵심은 전국정당을 만들기 위해 수도권 선거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선거연대 문제가 제기된 것이고,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통합 문제까지 거론된 것이었습니다. 통합론의 파괴력 때문에 호남 출신 의원 등의 공포감이 컸으나, 협상이 시작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도권에서 최소 10~15석 이상은 확보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부의 논쟁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바람에 협상력은 상실되었고, 누군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전에 여러 가능성을 공유한 문제였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혹여 당에 누가 될까봐 극도로 말을 아끼며 고스란히 감당했습니다.
대변인으로서 ‘녹색바람’을 부채질했습니다.
큰 보람이었습니다. 다른 대변인들이 대부분 현장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았으나, 제3세력의 선거 전략을 구현하는 일은 체질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녹색바람’이라는 용어의 사용 시기와 방식을 둘러싼 다소의 이견이 있기도 했지만, 누군가 강하게 응원해주는 바람에 쓸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초록바람’이 될 뻔도 했습니다. 녹색바람의 전국화가 우리의 목표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은 전략 단위의 판단을 존중한 결과입니다. 기자들이 처음엔 허세를 부린다고 웃었으나, 사전투표가 시작되자 바로 인정했습니다. 몇몇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선거를 치르다시피 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나중에 대표를 지낸 분의 참모가 ‘도대체 이런 당 시스템으로 어떻게 선거를 치른 것이냐.’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그 때 함께 한 분들의 노력이 컸습니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분들의 ‘도덕 불감증’이 일을 키웠습니다.
대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기성의 정치 수준을 70~80점 수준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새 정치를 하겠다고 모인 분들은 20~30점 수준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거듭된 정치혁신을 통해 나름의 시스템과 도덕성을 갖춰온 기성정치를 너무 저평가하다보니, ‘기성정치가 워낙 형편없으니, 그런 시스템이나 규율은 무시해도 된다.’는 소아적 우월주의가 작동해 곳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증거조작 사건과 최근의 지역위원장 여론조작 의혹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길 수도 있었던 대선에서 3등을 하며 참패했습니다.
참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시스템의 붕괴가 가장 뼈저리게 아팠습니다. 대선을 책임지고 치러본 유일한 분은 내부의 견제 때문에 당사에 들어올 수도 없었고, 선대위는 ‘상왕론’ 때문에 상견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회의를 열지도 못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상대방은 매일 가공할만한 포병부대(선대위 지도부 등)를 동원하여 후보를 공격하는데, 우리는 딱총부대만 열일하면서 응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이 양강구도를 만들었던 프레임은 무너졌고,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던 TV 토론을 거치면서는 적폐연대라는 프레임에 포위되기도 했습니다.
기계적 중도주의의 폐해가 컸습니다.
특히 안보 문제에서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 좌우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선 시기에 노출되는 이념 이슈의 ‘풍선 효과’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선거 때마다 북풍 공세를 당해봤던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이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했으나, 이를 대표하는 공약이 무엇인지 지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극도의 중도를 지향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정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엉뚱한 유치원 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2~3등 싸움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모두가 손을 놓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팬 미팅’을 하고 다니는 후보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2등을 하는 것과 3등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이런 말들은 허공에 떠다녔고, 졌다고 인정하는 꼴의 ‘패잔병의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뼈아픈 대목입니다. 아...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결국 자책골 때문이라는 평가에 이르게 되면 맨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 지도부가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이하게도 그렇게 물러난 전직 당대표는 그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언론에 대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책임정치의 무게는 이미 그 때부터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선대위원장 출신들도 대선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해방되어 거리낌 없이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인지도. 당이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의 차이를 절감하지 못한 탓입니다. 심지어 후보를 지낸 사람까지 자신의 패배 때문에 열리게 된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하면서 위기에 처한 당은 진흙탕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자신 때문에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꼴입니다. 내년 재·보궐선거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임정치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낳은 참사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짧은 자성과 성찰의 시간이 무색해지는 코미디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계파 패권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 생명을 걸었던 창당 정신에도 역행하는 것입니다.
국적불명의 ‘극중주의’는 패자의 역습이며, 시대정신에 대한 반항입니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망각한 정치공학도의 망상이며, 민주주의를 인터넷으로 공부한 서생의 엉뚱한 발상입니다. 대한민국을 바꿔놨던 5.18 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넘어섰다고 평가되고 있는, 촛불혁명에 나섰던 국민의 정치적 요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황당한 논리입니다. 차별화와 궤도 이탈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궤변입니다. 낡은 이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타자들이 그어놓은 이념의 경계선에서 ‘경계인’으로 살겠다는 자포자기 선언입니다. 우주처럼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국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 다원주의에 대한 부정이며, 미성숙한 ‘반정치의 정치’에서 비롯된 불량품입니다.
국민의당은 조선노동당이 아닙니다.
1인의, 1인에 의한, 1인을 위한 정당은 새 정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새 정치가 구현해야 할 정당민주주의의 샛길입니다. 친위세력이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용팔이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는 폭력적 정치활동입니다. 대기업 사장단이 공정위 앞에서 갑을관계 정상화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를 통찰하지 못하는 1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당의 미래는 이미 역사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일이 너무나 버겁습니다.
깊은 인연의 끈을 놓아야 하는 일이기에 고통스럽습니다. ‘단장지애(斷腸之哀) 모원단장(母猿斷腸)’의 아픔에 비유할 수는 없으나, 절망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 굴욕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 일에 인생을 소모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발을 내딛게 된지 2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금껏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매 순간마다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데 작은 기여를 하게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균형감각을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고언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른 말과 글을 쓰기 위해 늘 내 자신을 내려놓은 습관을 몸에 익히려고 했습니다. 어린 후배가 초안을 잡은 글을 몽당연필을 들고 일일이 손을 보시던 그리운 분에게 정치를 배우고, 지도자는 자신의 말과 글은 직접 써야 한다며 매번 나를 골탕 먹이며 분발을 요구하는 분에게 일을 해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 배움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보다 지금껏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이 또한 제 인생의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망설임 끝에 개인적인 공간에 지금의 심경을 남겨둡니다. 다 같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고 나오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서 망설임이 컸으나, 이 또한 작은 정치의 결단이니 힘을 냈습니다. 정치적 선택에는 명분이 뒤따라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따라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고행의 길이 보이지만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혹시 지나다 스치게 되면 등이라도 한번 두드려 주십시오.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 이 글은 저 개인의 순수한 생각이며, 지금까지 제가 함께 해온 ‘그 분’의 뜻과는 무관함을 밝혀둡니다.
** 이제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금연의 대열에 함께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피차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전자신문인터넷 박민희 기자 (mh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