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더딘 움직임에 연내 시범사업 출범을 목표로 한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도입사업이 개시조차 못하고 있다. 증권사 간 공동 인증을 위한 첫 사업을 넘어 2차 사업 준비에 나선 금융투자업계와는 달리 은행권은 이제서야 시스템 구축 기술 사업자 선정 공고에 착수했다.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도입으로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 업권 간 인증서 교차 사용을 허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려던 당초 목표도 적신호가 켜졌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블록체인 사업을 담당하는 은행연합회는 블록체인 기술 사업자를 대상으로 품질성능평가(BMT)를 실시할 예정이다. BMT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안요청서(RFP) 접수 앞뒤로 실제 업무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도입하는 제품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거치는 절차다.
은행권은 지난해 11월 16개 주요 은행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기술사업자 선정도 못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블록체인에 참여할 기술사업자 선정작업 공고를 1일에야 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금융투자업계에 이어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컨소시엄이 꾸려졌지만 망 구성방식에 대한 검증으로 인해 기술사업자 선정이 다소 늦어졌다”며 “은행과 증권, 보험사가 공동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될 수 있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투자업계 및 블록체인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은행연합회가 진행하는 성능평가는 기존 블록체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0일 공개할 제안요청서에도 특정 기술을 명시해 기술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추진하는 방식은 분산원장 체계를 지향하는 블록체인과는 거리가 다소 먼 방식”이라며 “인증과 공유가 분리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비용이 추가로 소요될뿐 아니라 추후 다른 업권과 연계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에 현행 성능평가 방식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연합회가 진행 예정인 성능평가는 특정방식을 제한하지 않으며, 제안요청서에서도 특정 기술을 명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증과 공유가 분리되는 방식은 결정된 사항이 없으며, 다양한 기술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해 기술방식을 선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블록체인 도입이 기존 은행 소비자 이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에서 블록체인 기술 도입 방식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다.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도입을 위해 구성된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권 간 협의체인 블록체인 협의체도 석 달째 열리지 않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먼저 나서 블록체인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장외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며 “블록체인 도입으로 인한 신규 사업 확장 범위가 넓지 않은 은행으로서는 인증 고객을 타 업권과 공유한다는 발상만으로도 위기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권 컨소시엄은 블록체인 핵심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다음 달 첫 시범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있다. 7일에는 컨소시엄 총회를 열어 블록체인에 적용할 수 있는 2차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신분증 분실 여부를 블록체인을 통해 전 증권사가 즉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도입 핵심은 참여기관 신뢰”라며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이 순조롭게 첫 사업을 개시하고 보험사와 저축은행 등 타 금융업권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소비자 편익을 면밀히 살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