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뇌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적습니다. 10%도 안 됩니다. 바로 그래서 뇌 과학은 흥미로운 영역입니다. 연구는 모르면 모를수록 재미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떤 연구를 하던 다 새롭습니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교세포연구단장은 주목받는 뇌 과학자다. 신경세포 중심 연구 패러다임을 깨고 비신경세포에 집중, 알츠하이머 치매의 새로운 원인을 규명했다. 치매 치료 후보 물질을 기술 이전했다.
이 단장은 생물학자를 꿈꾸던 김포 출신 시골 소년이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생리학을 전공하다 지도교수 손에 이끌려 뇌 과학자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라고 회상했다. 그에게 뇌만큼 흥미로운 연구 주제는 없다.
그는 “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흥분되고 기대된다”면서 “우리는 기억이 없으면 일상 생활을 못하는데, 지금은 그 기억이 어디에 저장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 파킨슨병, 중풍 등 뇌와 관련된 질병이 많은데, 뇌 과학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최근에는 컴퓨터 성능을 개선하는 데에도 뇌의 원리를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뇌 과학에서도 독특한 분야에 집중한다. 기존 뇌 연구는 신경세포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뉴런 독트린'이다. '뇌 과학=신경과학'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러웠다. 이 단장은 보조 기능만 한다고 여겨졌던 성상교세포(별세포), 마이크로글리아 같은 비신경세포를 주목했다.
이들 세포는 인간 뇌의 70~8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학계의 주목을 덜 받았다. 심지어 사람 뇌의 비신경세포 비중은 다른 동물보다 높다.
이 단장은 가장 많은 비신경세포인 별세포 연구에 집중,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할을 밝혀냈다. 기존 패러다임과 편견을 깼다. 최근 기술 이전한 치매 치료 후보 약물도 별세포에서 나오는 '가바(GABA)' 역할 연구에서 출발했다.
그는 “최근에는 머크 같은 세계적인 회사도 비신경세포 연구에 눈 뜨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신경세포를 목표로 한 약물이 대부분 실패했고, 비신경세포가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에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바이오 산업 인프라 부족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뛰어난 기술이 산업으로 꽃피지 못하고, 시장 규모가 작으니 원천기술 개발이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 구조다.
이 단장은 “바이오 산업 인프라가 열악하니까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결국 국내 제약사는 복제약 생산에만 머무른다”면서 “미국처럼 기초·원천 연구에 장기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