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국제표준을 둘러싼 국가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10개 조직을 2개로 통합하는 방안이 제안돼 한국의 폭 넓은 분과위원장(컨비너) 활동에 제동이 걸릴 우려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의 활발한 표준화 활동을 저지하고 자국 이익을 반영하려는 일본, 중국 등이 새로운 컨비너 자리를 노리고 있다.
디스플레이 국제표준을 심의·제정하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기술위원회(TC) 110 참가자들에 따르면 TC 110에 포함된 7개 워킹그룹(작업반)과 2개 프로젝트팀, 스터디그룹 성격의 1개 임시팀(ad-Hoc) 등 총 10개 조직을 2개로 통합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워킹그룹과 프로젝트 팀에는 한국, 일본, 중국,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다수 유럽 국가가 참여한다.
TC 110에는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3D 디스플레이 디바이스, 전자종이디스플레이(EFD),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FDD), 터치와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 레이저 디스플레이 디바이스 등 7개 워킹그룹이 있다. 대부분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떠오르는 기술이어서 표준화 활동이 활발하다.
워킹그룹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프로젝트 팀 단계에는 디스플레이 라이팅과 전자 디스플레이 디바이스를 위한 일반적인 테스트 방법 등 2개 조직이 운용되고 있다. 더 체계적이고 장기화된 표준화 논의가 필요한 경우 작업반으로 승격된다. 스터디그룹 성격의 임시팀으로 아이웨어 디스플레이를 주제로 조직이 운용되고 있다.
최근 유럽 국가에서 먼저 운용하는 전체 조직을 통합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아시아 국가보다 유럽이 상대적으로 참여자가 적어 모든 워킹그룹 활동에 참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각 작업반이나 프로젝트팀 등에 걸쳐 중복된 사안을 논의하는 경우도 있어 통합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제시했다.
이에 발맞춰 일본과 중국도 운용 조직 통합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 국가는 새로운 워킹그룹 형태를 제안하는 등 적극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표준화 활동에 참여하는 국내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표준화를 둘러싼 국익 경쟁 양상으로 봤다. 한국은 7개 워킹그룹 중 4개에서 컨비너를 수행할 정도로 활발하게 작업반 조직과 운영을 주도했다. 모든 워킹그룹은 참가국 의견을 반영하지만 실질적으로 컨비너를 맡은 국가가 표준화를 주도하는 성격이 강해 주요 부문에서 한국의 표준화 선점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표준화 작업을 위해 프로젝트팀을 꾸린 뒤 목표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해산하는게 일반적”이라며 “이번처럼 여러 워킹그룹과 프로젝트팀을 통합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표준화 회의에서 각 참가국은 워킹그룹과 프로젝트팀 등 10개 조직을 2개로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도 공식 의견을 제출했다. 국가별 이해가 상충하는 만큼 상당히 다양한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통합안은 오는 9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사실상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주도권 확보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노 OLED 워킹그룹 분과위원장(전자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제품이라도 표준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경우 자국 기술을 표준으로 내세워야 시장 선점 효과를 노릴 수 있어 국가간 표준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표준 선점 경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산업계 전문가들이 적극 국제표준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제도 지원과 기업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