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위기다. 공장은 자꾸 나라 밖으로 빠져나간다. 한때 우리가 일감을 맡긴 중국은 자국 제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세계 1위, 세계 최초 타이틀도 제법 거머쥐었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기술에 투자한다.
위기는 기회다. 겨울이 오면 솔이 푸른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제조업 위기에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산업이 있다. 싹이 보이는 우리 기업도 있다. 이런 산업, 기업을 알아볼 수 있다면 우리 제조업의 미래는 밝다.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같은 완성품은 수많은 소재·부품으로 만들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혁신 제품 뒤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소재·부품 부문의 혁신이 있다. 그 소재·부품을 만드는 데에는 새로운 공정과 장비가 쓰였다. 제조업 범주를 완성품으로 좁힐 이유가 없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우리 길이 보인다. 전자제품 제조 강국으로 명성이 높던 일본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산업 뿌리가 건재하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특수를 보는 우리 기업 대부분은 캐논도키 증착 장비를 쓴다. 소니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낮지만 이미지 센서를 대부분 제조사에 공급한다.
국내에도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는 한때 유리 가공업이 흥했다. 지금은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그 대신 그들이 사들이는 장비는 우리 손으로 만든다. 기술이 독보적이다. 20~30%의 마진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세계 최초로 3차원(D) 실장검사장비를 개발한 고영테크놀러지는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섰다.
산업 구조 변화는 필연이다. 선진 제조업은 결국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선진국의 뿌리 산업이 세계 제조업을 떠받친다. 뿌리 산업 경쟁력을 갖추면 외풍에 덜 취약하다.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기술이 집약된다. 그 덕분에 이익률도 높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이 봇물을 이룬다.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 공장'으로 표현되는 생산 자동화·지능화가 핵심이다. 일자리 감소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려를 불식하려면 산업 고도화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단순히 공장을 효율적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속 가능한 제조업'이다. 지금의 위기는 뿌리 산업을 돌아보라는 경고일지 모른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