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20일 캘리포니아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퀄컴을 상대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10년간 스마트폰 시장에서 퀄컴과 부품 파트너로 지내왔다. 2007년 아이폰을 처음 출시한 이래 9년간 오직 퀄컴 칩만을 사용해왔다. 아이폰7을 출시한 지난해 9월부터 인텔 모뎀칩도 사용하는 등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베이스밴드 칩 전략을 투트랙으로 전환했다. 지난 10년간 퀄컴과 호흡을 맞춰온 애플은 퀄컴을 왜 제소했을까.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스마트폰 판매량 증가가 떨어지면서 보다 큰 마진을 확보하기 위한 애플의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금융서비스회사 캐너코드 제뉴이티(Canaccord Genuity)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월클리는 두 회사 소송건을 “세계 스마트폰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 들면서 애플이 높은 마진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잘 조정된 공격 같다”고 평가했다.
퀄컴의 라이선스 이익은 10여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2011년 회기(2010년 10월~2011년 9월)부터는 이익이 더 가팔랐다. 2010년 회기(2009년 10월~2010년 9월)에는 라이선스 수익이 30억달러선이었는데 2011년 회기들어 40억달러 후반으로 10억달러 이상이나 많아졌다. 2015년 회기(2014년 10월~2015년 9월)에는 70억달러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었다. 2016년 회기(2015년 10월~2016년 9월)에는 2015년 회기보다 약간 감소했다. 최근 5년 동안 퀄컴은 370억달러 라이선스 매출을 거뒀고, 같은 기간 세전 이익은 320억달러에 달했다. 매출에서 생산비를 뺀 총 마진이 61%에 달했다. 애플 마진은 이에 못 미친다. 애플은 최근 회기(2015년 10월~2016년 9월)에 기록한 총 마진은 39%였다. 퀄컴의 40% 정도였다. 2017년 회기 애플 마진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이 같은 마진 차이가 두 회사 간 소송을 불러일으켰다.
불공정 소송을 당한 퀄컴 주가는 맥없이 무너졌다. 23일(현지시간)에 14%나 하락, 최근 15개월간 최고하락률을 보이며 53.80달러에 머물렀다. 같은 날 애플 주가는 120달러대로 큰 변동이 없었다.
애플이 라이선스 공세에 나선 건 아이폰 수익이 박해진 것도 원인이다. 2015년 회기만해도 아이폰 평균 판매가는 687달러였는데 최근 회기에는 619달러로 하락, 1년 사이에 68달러나 감소했다.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저가품을 앞세운 중국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애플이 저가품을 내놓은 탓이다.
애플이 소송에서 노리는 건 라이선스 가격 인하다. 구체적으로 라이선스 매출 계산 방법을 바꿀 것을 원하고 있다. 애플은 “스마트폰 총 판매액에 라이선스료를 물고 있다. 이 때문에 퀄컴 칩을 사용하지 않은 스마트폰에도 라이선스료가 부과되고 있다”며 이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퀄컴은 애플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반박한다. 애플이 제대로 된 정보를 당국에 주지 않으면서 잘못된 사실로 정부를 부추기고 있다고 항변한다. 돈 로젠버그 퀄컴 법무 담당 부사장(제너럴 카운셀)은 “법정에서 잘못된 사실을 밝힐 수 있어 애플 소송을 환영한다”면서 “법정에서 애플 행태를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시장 전문가들은 두 회사 간 소송이 금방 안 끝나고 몇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퀄컴이 애플을 상대로 역제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 시장 분석가는 “샌디에이고에 본사가 있는 퀄컴은 지난 20년간 비슷한 소송과 싸워왔고, 또 이겼다”면서 “라이선스료 인하를 원하는 애플이 퀄컴의 20년 역사를 뒤집으려하고 있다”고 평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