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김하늘] 그녀의 새로운 얼굴 ‘여교사’, 새롭게 시작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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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필라멘트픽쳐스 / 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여교사’는 겉으로 보기엔 동료 또는 사제지간인 두 여교사와 한 명의 제자 사이를 ‘갑과 을’ 관계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열등감과 질투는 파멸로 향하는데, 그 끝을 모르고 파국까지 치닫는 인물이 김하늘이 맡은 효주다.

극중 효주는 집안도 애인도 변변치 않은 인물이다. 아무것도 쥔 것이 없는 자신과 모든 것을 다 가진 혜영(유인영 분)을 바라보며 효주는 열등감과 질투로 망가진다.

효주는 계약직인데다 임시로 담임을 맡는다. 정규직과 정담임을 ‘대체’한다는 것은 자신의 것이 없다는 뜻이기에 쓸모없는 인물로도 여겨지기도 한다. 10년 동안 사랑했던 애인에게는 ‘네가 (나를) 좋아해서 사랑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후에 마음을 준 재하에게는 ‘뭘 바라고 준건 아니죠?’라는 소리나 듣는다. 이 여자에게 사는 것이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효주에게 연민이 갔다. 효주에게 하루하루 일상은 너무나 똑같고, 환경도 좋지 않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친구도 없는 느낌이다. 누군가와 소통을 하면 꼬여있는 것도 풀 수 있는데, 효주에겐 그런 대상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꼬인 것 같다. 열등감이 커졌고, 그래서 너무 짠하고 안쓰러웠다.”

외롭고 쓸쓸한 효주를 표현하기 위해 김하늘은 의도적으로 푸석푸석한 얼굴을 만들었다. 단정한 옷차림마저 건조해서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다. 그렇게 김하늘의 이미지를 벗겨낸 효주는 초라한 얼굴을 한 채 관객을 붙든다.

“감독님과 의상 미팅을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원하셨다. 내가 보기엔 초라한데 자꾸 ‘너무 예쁜데요’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이것보다 더 하면 선생도 아니에요’라고 했다.(웃음) 최소한 선생이니까 단정해야 하지 않나. 의상ㆍ메이크업 디자인과 톤을 최대한 가라앉힌 다음에 카메라로 봤는데, 내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항상 멜로를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각도로 봤을 때 예쁘게 나오는지 아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감정이 많이 따라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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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필라멘트픽쳐스

메말랐던 효주에게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존재가 제자 재하(이원근 분)다. 재하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던 어두운 공간인 효주의 방을 두드리고, 그 순간 효주는 빛이 나기 시작한다.

“재하를 사랑이라고 느꼈지만 결과적으론 착각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선생님으로서의 호의로 도와준 것이 맞다. 우선 재하와 이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혜영에 대해 ‘너와 나는 달라’라는 우월감이었다. 다른 선생님에게도 내가 재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말하지 않나. 그렇게 시작했는데 점점 관심이 갔고, 혜영과 재하의 관계를 알고 칼자루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거다. 여러 가지 욕망이 올라오면서 자신의 감정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칼자루가 나를 향하게 한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동안 효주에게 없었다가 혜영과 재하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효주의 세포를 반짝거리게 해준 것이다.”

자존심이 센 효주는 후반부에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마는데, 그때 효주는 한순간에 자존심을 버린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혜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신은 보는 사람들에게마저 비참함을 전한다.

“효주는 자존심은 센 친구인데, 유일한 희망이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은 이사장 딸인 혜영에게 ‘왜 잘 보여야 해?’라는 생각을 하고 재하와의 관계를 혼자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효주가 생각한 것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혜영의 덩치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본 것 같다. 혜영이 말 한마디에 계약 명단에서 빠졌다는 말을 듣고 그 실체를 정확히 느낀 느낌이다. 그렇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남자친구도 떠났고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희망마저 사라졌으니 무너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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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필라멘트픽쳐스

사실 김하늘에게 열등감은 떠올리기 힘든 키워드다. 특히나 이 시나리오를 골랐을 때는 예비 남편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때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하고 우울해졌다는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효주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까.

“누군가를 대입시켜 이 캐릭터를 이해했다기보다 효주를 그냥 공감하고 이해했다. 모두 내 안에 다 있는 감정이다. 내가 효주처럼 많이 꼬여있진 않지만, 효주의 상황라면 이해가 갈 것 같았다. 내 연기 패턴은, 연기할 때는 몰입하고, 그 신 외에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다. 굉장히 슬픈 신을 연기한다고 해서 그 전에 슬픈 감정을 유지하진 않는다. 어릴 때는 우는 신을 찍기 전에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이 깨지지 않도록 했지만, 그건 내 연기를 찾지 못했을 때의 스킬이었다. 지금은 내가 건강한 정신상태를 가져야 몰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이 빠져서 몰입이 안 된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열등감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연기를 아예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효주가 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없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 연기를 믿는 게 아니라, 이 캐릭터의 감정을 믿었다. 연기 테크닉은 연륜으로 나올 수 있는 부분이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주인공을 얼마나 공감하느냐였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 신에서 쥐어짜야 한다. 하지만 효주는 내가 완전히 공감했다. 그래서 특별히 뭘 준비하지 않아도 카메라 앞에 가면 효주가 될 수 있었다.”

최근 김하늘은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로맨틱 코미디보다 드라마 ‘공항가는 길’ ‘여교사’처럼 복합적인 감정의 캐릭터로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데뷔 21년 째 배우인 김하늘은 지금도 대중들에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도전’이나 ‘변신’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 작품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차근차근 넓혀가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도전보다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었다. 연기적으로도 그동안 해왔던 캐릭터들과 너무 다른 색깔이었고, 우스갯소리로 ‘로망스’와 상반된 느낌 아닌가. ‘로망스’로 좋아해줬던 대중에게 ‘외면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누군가 ‘김하늘에게 처음 보는 모습이라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박수를 쳤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면 또 가야할 길이 많아지지 않나. 거기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여교사’는 그런 작품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