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이 `동맥경화` 위기다. 투자가 수년째 벤처에 몰리고 있지만 쌓인 투자금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내년부터 1조원이 넘는 벤처펀드 만기 물량이 추가로 쏟아진다. 회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대규모 자금이 비상장 시장에 묶일 수 있다. 회수 실패에 따른 저가 자산 매각 우려로 피투자 기업도 전전긍긍이다. 벤처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중소기업청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새해부터 매년 1조원이 넘는 만기 도래 벤처펀드 물량이 시장에 쏟아진다.
새해 1조2296억원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1조1109억원, 2019년에는 1조3049억원, 2020년에는 1조6027억원이 순차로 만기 도래한다.
2022년부터는 연 평균 만기 도래 규모가 2조원을 넘을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대규모 출자에 나선 벤처펀드 만기 도래 시점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2022년 2조4045억원, 2023년 2조6831억원 규모다. 2014년부터 출자에 나선 벤처펀드 만기 물량을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20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회수 시장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벤처투자 시장의 주요 출자자인 모태펀드가 올 3분기까지 회수한 금액은 총 1조4594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연간 회수금이 2000억원 이상으로 올라섰다.
모태펀드가 전체 벤처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안팎이다. 투자 5~7년 이후 회수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투자 대비 회수 실적은 미미하다.
투자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는 것은 회수 창구가 IPO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올 10월까지 회수된 자금에서 IPO를 통한 회수 비중은 30%다. M&A로 회수에 성공한 금액은 174억원에 불과하다. 전체 1%도 안 된다.
특히 최근 IPO와 M&A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집중됐다. 바이오 투자는 2012년 1052억원에서 올 10월 3812억원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중은 8%에서 22%까지 늘었다.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에 기술성 평가가 도입되면서 바이오 업종 상장이 다른 분야보다 용이하다”면서 “코스닥에 상장하지 못하더라도 길게 봐야 하는 업종 특성으로 말미암아 장외시장 매각이나 코넥스로 우회할 수 있어 회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금이 돌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피투자 기업에 돌아간다. 벤처펀드는 만기 도래 시점 안팎으로 투자 자산을 매각, 투자자(LP)에 분배한다. 이 과정에서 팔리지 않은 자산은 VC가 떠안는다.
문제는 국내 VC 상당수가 영세하다는 점이다. 매각하지 못한 자산을 고유계정으로 돌리기에는 부담이 커진다. 언제 팔릴지도 불투명해 자연스럽게 저가로 매각에 나서게 된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는 “벤처펀드가 갑자기 빠져나가면 피투자 기업은 매각 등 각종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벤처투자 물량을 사들일 수 있는 세컨더리펀드 등 다양한 회수 수단을 마련해야 벤처기업이 흔들림 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7~2024년 벤처펀드 만기 예정 물량 (단위:억원)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