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여년 전인 1780년 초여름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황제 칠순 잔치를 축하하러 가는 200~300명의 사절단 일원으로 북경(베이징)을 거쳐 열하를 다녀온 후 집필한 여행기가 `열하일기(熱河日記)`다.
사절단은 거센 물결의 강을 위태롭게 건너고, 새벽 안개를 헤치며, 무더운 날씨에 장대 빗줄기를 맞고, 때로는 노숙을 하며 하루 60여리를 걸었다. 일행은 고생했지만 청나라 문물을 보면서 39일 만에 북경에 닿았다. 연암은 머무는 곳마다 호기심이 발동돼 곳곳을 둘러보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고 술도 즐기면서 청나라 사람들의 삶과 학문과 가치관을 탐색했다. 그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조선 사대부들에게 보내는 강한 메시지와 함께 적었다.
연암은 청나라에 도착해서 규격화된 벽돌을 사용해 벽과 담을 쌓고 자웅이 잘 맞는 기와로 틈새 없이 지붕을 잇는 모습을 보면서 진흙을 잔뜩 올려서 무겁고 비바람에 취약하며, 쥐와 뱀이 기와 밑을 다니는 조선의 지붕과 비교했다.
그는 청나라 수레의 다양한 용도와 표준화된 궤도, 편리한 물자 수송 방법을 부러워했다. 조선에서는 물자가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동하지 못해 생산지에서는 썩어 없어지거나 버려지고,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고 비싸서 살 수 없어서 백성들이 빈곤해졌다고 판단했다. 이는 수레가 다니지 못함이며, 수레가 다니지 못함은 사대부들이 글만 읽을 뿐 기술이나 방법을 전혀 연구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앞선 제도를 본받지도 않음에 있다고 비판했다.
배와 수레를 발명하고 집 짓는 방법과 옷 짜는 방법을 고안한 고대 황제 헌원씨의 국가 경영을 부러워했다.
연암은 조선의 말(馬) 육종과 보급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대궐이나 장수들이 필요로 하는 수의 말을 토산종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중국 심양·요동 등지에서 사들이며, 제주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말 목장이 있지만 400~500년 동안 종자를 개량하지 않아 새끼를 낳을수록 몸집이 작아져서 등에 올려진 나뭇짐도 견디지 못하는 조랑말이 됐음을 안타까워했다.
조선 궁궐을 지키는 무장들이 말을 타고 출전하는 훈련을 해야 하지만 이런 조랑말마저 부족, 돈을 주고 말을 빌려서 훈련을 하니 말 값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말은 더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찬물을 먹여야 하지만 말이 싫어하는 더운 죽을 끓여 먹일 정도로 말 다루는 법을 모름을 지적했다. 청나라에서 좋은 종마를 구해 번식함으로써 종자를 개량하고 키우는 자세한 방법까지 제시했다.
여럿 모인 자리에서 좋은 말을 고르는 방법이나 관리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양반이 있으면 좀스럽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 벼슬하는 사람들은 실생활의 이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농업이나 목축에 대한 관심을 수치로 삼았고, 말 목장에 관한 정책 수립과 관리를 담당하는 감목(監牧)조차 말에 대한 지식이 없고 배우기를 꺼려하며 하인들에게 맡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연암은 이를 지적, 중국의 말 사육 성공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나라는 오직 중국뿐이었고, 명나라만 염두에 두고 청나라는 그저 오랑캐 나라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연암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인식하고 있음이 조선 선비들의 편견과 착각이라면서 진실을 알려거든 청나라로 가서 직접 보라는 강하게 메시지를 전했다.
연암은 명분과 허울에 사로잡혀서 머리로만 살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과 지배층에게 통렬한 질타를 가했다. 그는 조선도 청나라처럼 돼야 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해학을 가미한 글로 표현했다. 청나라 문화가 생각보다 융성하고 외국과의 문호가 개방돼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대부들의 편협한 생각을 부끄러워했다.
당시 중국의 사회상을 엿보려는 호기심에 읽은 `열하일기`가 의외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정리해 보았다. `열하일기`를 쓴지 2세기가 지난 지금 연암의 눈으로 우리 한국 사회의 시스템, 가치관, 산업을 조명해 본다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한 달 이상 걸리던 북경 길이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됐고, 중국에 한정돼 있던 문물 교류가 오대양 육대주 모든 나라로 확대됐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 대국, 무역 대국,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압축 성장을 했다. 서구 국가들이 100년 이상 걸린 변화를 불과 30년 만에 후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변화의 상당 부분은 기업가들의 추진력, 결단력, 창의력과 국가의 통찰력이 바탕으로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기적처럼 이룩한 산업화와 달리 연암이 질타한 조선 사회의 의식 구조, 나라 운영 시스템이 200년 이상 지난 오늘날 완전히 개조되고 변화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혁을 단숨에 이룩했지만 여전히 정치·사회 혼란을 되풀이해서 겪고 있고, 최근에는 경제 성장의 어려움에 당면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의 리더십 회복과 함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절제 및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학구열, 성취욕, 근면성 등 넘치는 에너지를 국가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십을 갈망해 본다. 우리 젊은이들의 솟구치는 에너지가 기업의 창의력·추진력, 국가 정책의 합리성·효율성과 만나 도약의 바탕이 됐으면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한 빨리, 제대로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바심이 생긴다. 연암의 눈과 가슴으로 세상을 다시 둘러봐야겠다. 실사구시 정신으로 경영한 나라들은 오늘날 강국이 됐다. 철저한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행한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선두 기업으로 경쟁력을 확보, 당당히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중국 고객을 만나고 중국에 있는 생산 현장을 오가면서 자동차 전장 산업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눈으로 보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항상 공부하며, 공중파 방송 `개그콘서트` 한 장면의 대사처럼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박계현 ㈜대성엘텍 사장 ghpark@dselt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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