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스포츠’라이트|정우영①] 스포츠 캐스터계의 ‘음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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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우영 트위터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타구는 높게 멀리!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

웬만한 야구팬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말은 SBS스포츠 정우영 아나운서를 대표하는 어록 중 하나다. 그는 주옥같은 멘트를 쏟아낼 뿐만 아니라 위트 있고 안정적인 중계방송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스포츠 캐스터다.

지난 10일과 11일 열린 LG 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2016 타이어뱅크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1,2차전을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각각 중계했던 정우영은 ‘가을야구’다운 두 팀의 명승부에 박수를 보냈다.

“양 팀 감독 모두 좋은 경기를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진 것 같아 캐스터이기 전에 팬으로서 굉장히 기분 좋은 경기였습니다. 저는 투수전이 야구의 백미(白眉)라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수준 높은 투수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LG 오지환 선수는 1차전에서 큰 실책을 범했음에도, 2차전에서 팀을 구했잖아요. 이런 게 야구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비록 승패는 갈렸지만 두 팀 모두 좋은 경기를 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아를 누르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LG는 넥센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 티켓을 두고 치열한 승부를 펼치게 됐다. 결과를 예측해달라는 요청에 다소 난감해했지만 정우영은 두 팀의 승부 또한 와일드카드 결정전 못지않은 대등한 승부가 될 것 같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저나 해설위원들이 예측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는 특정 팀의 승리를 예상하면 사람들이 제가 그 팀의 팬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한 팀의 승리를 예측한다기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도 좋은 경기가 될 것 같아요. 그동안 LG가 넥센에게는 약한 면모가 있었는데 올해 상대 전적을 우세로 가져가면서 약점을 지웠기 때문에 대등한 승부가 예상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1차전 결과도 중요하지만 2차전이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넥센 염경엽 감독님이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을 2차전 선발투수로 내는 것도 저와 똑같이 2차전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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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업계에서 손꼽히는 스포츠 캐스터지만 정우영의 어린 시절 꿈은 작가와 가수였다. 특히 고등학생 때는 밴드 활동도 했을 만큼 음악을 향한 열정과 꿈이 컸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스쿨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꿈은 제가 23살 때 군 복무하던 시절 충격적인 경험을 하면서 접게 됐어요. 제가 상병 말호봉 쯤 밴드 할리퀸 보컬 권태욱 형이 이등병으로 들어와서 노래를 시켜봤어요. 그 형이 ‘널 잊진 못할 거야’라는 곡의 첫 소절을 부르는 걸 듣는 순간 하늘밖에 하늘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음악은 내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꿈을 접게 됐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지만 신춘문예 첫 문단을 읽고,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꿈도 포기했어요.”

비록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꿈은 접었지만 정우영이 꼭 한 번 이루고 싶은 소망은 가수 이승철에게 냉철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또, 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이하 ‘판타스틱 듀오’) 전인권 편에 응모하지 못한 아쉬움과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이라는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Mnet ‘슈퍼스타K’ 참가해서 이승철 씨에게 냉철한 평가를 받고 탈락하는 게 제 꿈이에요. 이승철이라는 존재는 제게 꿈같은 존재거든요. 그리고 전인권 씨도 정말 좋아하는데 얼마 전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아까웠어요. 출연 소식을 미리 알았다면 저도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도전했을 거예요. 전인권 씨가 경복궁역 근처에서 운영했던 카페에 출근 도장 찍듯 갔을 정도로 정말 팬이에요. ‘판타스틱 듀오’ 응모를 못한 게 한(恨)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뮤지션들을 모두 존중하고 존경해요. 물론 아이돌도 좋아하죠. 걸그룹 가운데는 여자친구 팬인데 SNS에 여자친구 좋아한다고 올렸더니 사인CD까지 보내주더라고요. ‘더쇼’ 촬영 때문에 회사 왔을 때 로비에서 만나서 사진도 찍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흥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정우영이 음악의 꿈을 접고 아나운서로 진로를 선택한 계기는 한 일간지 면접관의 말 한 마디였다.

“대학교 다닐 때 학점이 높지 않았어요. 음악이 취미다보니 수업도 잘 안 나갔었죠. 그러던 중 졸업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면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학점과 관련 없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다가 언론고시를 봤고, 한 메인스트림 일간지에서 면접을 보게 됐어요. 그때 면접관 중 한 분이 제게 ‘기자보다 아나운서가 더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이 지금 이쪽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를 떨어뜨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제가 워낙 귀가 얇아 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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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냉철한 심사평을 받는 꿈은 이루기 어려워졌지만, 정우영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은퇴한 후 어딘가로 떠나 한 편의 대서사시를 완성하는 게 정우영이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은퇴 후 유럽에 가서 자세한 취재를 거친 다음 십자군 원정과 관련된 장편을 쓰는 게 제 목표였는데 시오노 나나미 씨가 먼저 썼더라고요. 그 다음 목표는 몽골의 역사였는데 그것도 이미 허영만 화백이 책으로 써냈죠. 그 두 책이 정말 좋아서 지금도 침대 맡에 놓고 잠들기 전 읽고 있어요. 조금 과장하면 2000번 정도는 읽었을 정도죠. 제 목표를 두 분이 해주셨다는 게 대중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위대한 작가와 화백을 통해 그 대단한 이야기들이 쓰였으니까요. 저 역시 나중에 어디론가 떠나서 뭔가를 쓰고 싶어요.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앙코르와트나 캄보디아 피라미드를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를 비롯해 ‘모든 야수 정지’, ‘기아 타이거즈에게 내일이 열렸습니다’ 등 마치 한 편의 시(詩) 같은 그의 중계 어록들은 정우영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많은 분들이 준비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준비한다고 해서 그게 다 나오진 않아요. 시청자 분들이 인상 깊게 느끼는 멘트 또한 운이 맞아 떨어진 거였죠. 대부분은 보이는 상황을 그대로 말한 거지만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 같은 경우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캐스터의 멘트를 벤치마킹했어요. 예전에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던 도중 어느 타자가 친 홈런 볼이 외야 2층에 떨어지더라고요. 그때 현지 캐스터가 ‘씨유 업스테어스(See you upstairs)’라고 딱딱 끊어서 샤우팅을 했는데 그게 정말 괜찮아보여서 한국식으로 바꿔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라고 외치게 됐죠.”

현재 SBS와 SBS스포츠 메인 야구캐스터로 활약 중인 정우영은 많은 스포츠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롤 모델로도 꼽힌다. 그는 ‘포스트 정우영’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선배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스포츠 캐스터는 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습니다. 방송사별로 공채가 3~4년 정도 주기로 나올 만큼 기회가 너무 적죠. 그래서 제가 함부로 꿈을 키우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제 말 하나만 듣고 청춘 날리면 제가 책임질 수도 없는 문제니까요. 저는 제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우연히 운과 때가 맞아서 스포츠 캐스터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고, 경험도 많이 쌓게 된 거죠. 그럼에도 계속 꿈을 포기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앞날의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신 스포츠 캐스터만 바라보고 준비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스포츠 캐스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나가는 방송인이 될 수 있어요. 꿈을 계속 간직하면서 방송에 매진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