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엑스포 이후 퇴물이 된 엑스포 과학공원. 이곳과 국립중앙과학관을 잇는 엑스포 지하차도는 지난해 1월 준공됐지만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한국 과학을 상징하던 엑스포 과학공원의 곳곳이 철거되면서 을씨년스러워졌다.
대덕연구개발특구 43년 역사를 자랑하는 과학도시 대전의 현주소다. 언제부터인가 대전시와 과학기술 간 소통이 끊어졌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내부에서는 공공연히 “더 이상 대전 입지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며 혀를 찬다.
대전시는 이미 오래전에 출연연 지원을 끊었다. 예산 배정은 고사하고 전에 맺은 협약조차 잊은 지 오래다. 민선5기 시절인 2014년 11월 이전에 출연연과 맺은 협약은 확인조차 어렵다.
대전시 과학특구과 담당은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서 오래된 협약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면서 “창조혁신담당관실에 문의해도 업무 협약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출연연은 대전시의 무관심이 불만이다. 다양한 지원 방안을 내놓는 다른 지역 자치단체를 기웃거린다. `출연연=대전` 구도가 깨지고 있다.
3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대전 대덕특구는 1973년 착공 이후 국가 연구개발(R&D) 중심지였다. 원자력발전 자립, 한국형전전자교환기(TDX),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반도체, 유전공학, 항공우주기술 개발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판세가 변화했다. 지방분권, 지방균형발전론이 대두되면서 광주·대구·부산·전북 등지에 R&D 특구가 지정됐다. 64개 출연연 가운데 24곳이 분원을 만들어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대전 이외의 지자체는 정치권까지 동원, 출연연 분원을 유치했다.
부산시는 2012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분원 설립을 협의하고 있다. 부지 및 건물을 무상 임대하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본원을 충북 오창으로 이전하려 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2003년 생명연에 10만평 부지를 20년 무상 임대해 준 충북도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생명연 내부에서도 가능하면 가고 싶다는 의견이 많다.
출연연 종사자들은 “대전시가 출연연을 홀대하는 분위기”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대덕연구단지를 `과학도시` 이미지 구축에만 활용할 뿐 정작 출연연 R&D 제품을 외면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한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 기종 선정 과정에서 자기부상열차 대신 트램을 선정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대전시는 2014년 4월 도시철도 2호선 기종으로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자기부상열차를 선정했다. 자기부상열차는 대전에서 개발한 국가 주도 R&D의 대표 성과물이었다.
대전시는 시장이 바뀌자마자 도시철도 2호선 기종을 `트램`으로 바꿨다. 극심한 논란이 이어지고, 22개 출연연이 반발했지만 대전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후 시장이 기계연을 방문, 이해를 구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전시의 `행정 엇박자`로 출연연 관련 시설이나 행사가 제 기능을 못하거나 사라지는 일도 벌어졌다.
국립중앙과학관과 옛 엑스포과학공원을 잇는 4차로 지하차도는 과학을 공통분모로 하는 양쪽의 공간을 하나로 잇는 연결 통로를 만들자는 취지로 조성했다. 하지만 준공 이후에도 20개월 가까이 폐쇄된 상태로 방치했다. 대전시가 2014년 초 `엑스포 재창조` 사업을 추진하면서 연결 통로 부근에 과학과 연관성이 별로 없는 HD드라마타운 조성 방안을 밝히면서 지하차도의 의미가 퇴색했기 때문이다.
과학관과 과학공원 위를 달리던 자기부상열차 노선도 같은 이유로 허리가 잘렸다. 자기부상열차 노선은 과학기술진흥기금 98억원을 투입해 2008년 4월 개통, 과학관 관람객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구간은 새로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지가 가로지르면서 반 토막이 났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와 충남대 등이 1999년부터 만든 `인력선 솔라보트 대회`도 대전 갑천을 떠나 경남 진해, 통영 등지를 떠돌다 지난해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대전시의 무관심이 만든 출연연은 대전시 행사 참여에 미적지근하다. 2014년 열린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에는 14개 출연연만 참여했다. 다음 달에 열리는 행사에는 대부분 참여하지만 기존 프로그램 재탕 수준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전시는 오히려 느긋하다. 출연연과 대전시 간 불편한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송치영 대전시 경제과학국장은 “출연연이 불편하지 않게끔 요구 사항을 이행하고 있고,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면서 “다만 모두로부터 칭찬 받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대전이 과학도시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출연연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타 지역이 출연연 분원 유치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대전시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지금이라도 대전시가 과학 발전이라는 국익은 물론 대전시와 출연연 공통의 이익을 끌어내기 위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