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스포츠든 직장 생활이든 어디서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는 가치가 높다. 필요할 때 어디에 갖다놔도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스포츠방송 스포티비(SPOTV) 김민구 해설위원은 스포츠 해설계에서 전무후무한 멀티 플레이어다.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야구 해설위원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올해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한국 K리그 챌린지(2부 리그)를 중계하는 축구 해설위원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상황 전달이 주된 목적인 캐스터들이야 여러 종목 중계가 가능하지만 전문성을 요하는 해설위원이 전혀 다른 두 종목을 해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스포츠 해설계의 멀티 플레이어는 김민구가 바라던 목표이기도 했다.
“해설을 지원할 때 처음부터 두 종목을 중계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스포티비에는 야구 해설을 지원하고, KFA TV(대한축구협회 TV)에는 축구 해설위원으로 이력서를 썼었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뭣도 모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아직 저한테는 축구, 야구 두 종목 해설 모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자신만만했던 과거의 패기와는 달리 직접 야구와 축구 두 종목 해설을 맡아보면서 그는 자신이 가진 역량에 비해 큰 욕심을 부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단기간 내 마니아 팬들을 형성했을 만큼 김민구의 해설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제 성격이나 해설로서의 강점은 저 자신을 잘 파악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주위에 성공한 친구들만 봐도 모두 자기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방송 2년차 때까지만 해도 외국해설만 들었어요. 가끔씩 팬들 반응을 보고 잘한다는 분들의 해설을 들어보면 저한테 없는 부분이 어떤 건지 많이 느껴져요. 단점들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연구하려는 것도 제가 가진 장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호의적인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김민구는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가 해설할 때 화면에 보이는 장면을 설명하는 건 잘하는데 경기 전술을 짚어주는 게 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고민을 했던 게 축구를 학문과 같이 접근하는 건 제가 추구하던 중계는 아니었어요. 영국 중계방송진도 박진감과 재미가 먼저지, 전술 분석은 경기가 끝난 후 리뷰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내용일 뿐 중계 때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그래도 시청자 분들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해설할 때 전술적인 부분을 많이 짚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를 위해 김병지 위원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영국으로 건너간 김민구는 1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현지 ISO 인증 기업에서도 근무했다.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영국 생활을 통해 많은 견문을 넓혔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대공황처럼 세계 경제가 좋지 않았어요. 영국의 여의도라 불릴 정도로 금융 중심지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에서 그때 당시에만 약 5000명이 실직했을 정도였죠. 그러다 ISO 인증 기업에 입사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회사 생활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회사는 업무와 관련해 여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저는 야근도 하고, 한국 스타일로 철저하게 일했는데 이를 좋게 봐주셨는지 야근 수당이나 연봉, 직함도 올려주고 대우를 정말 잘해줬어요. 그런데 제가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해서 항상 스포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지인이 같이 축구 관련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어요.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고,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라 뭘 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나오고 지인과 함께 축구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부족해서였을까. 야심차게 도전한 사업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김민구도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아마추어였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이후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해군 현역으로 입대했고, 전역 후에는 번역 및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로를 탐색했다. 그러던 가운데 스포츠 해설가라는 직업이 김민구의 눈에 들어왔다.
“축구 경기를 보다가 해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스포티비와 KFA TV에 각각 야구와 축구 쪽으로 이력서를 넣었어요. 둘 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는 했는데 스포티비는 제가 야구 관련 경력이 없어서 당장 해설로 데뷔시키기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러 방안들을 에세이로 써서 제출했고, 그 중 1년 동안 기록원 경력을 쌓는 방안이 채택돼서 바로 해설가로 데뷔하지 않고 기록원으로 1년 동안 근무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기록원만 해서는 생활이 어려워서 허락을 받고 KFA TV 축구 해설도 병행했었죠. 그 당시가 제 인생 통틀어 가장 바쁘고 몸이 힘들던 시기였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제가 이 일을 목숨 걸고 한다는 걸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1년 동안 메이저리그 기록원과 축구 해설을 병행했던 김민구는 지난해 스포티비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으로 정식 데뷔했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주로 새벽과 아침 시간대에 중계 일정이 잡혀 있어 체력적으로 힘든 건 전년도와 마찬가지였지만 피곤할 겨를도 없이 신기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야구 리그를 중계한다는 점이 의미 있었어요. 페넌트레이스 경기뿐만 아니라 올스타전, 홈런더비, 포스트시즌까지 중계하면서 신명나게 일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신기했고, 즐거웠던 생각만 나요.”
유럽축구, 메이저리그 등 해외 스포츠들이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비(非)운동선수 출신 해설위원도 많이 늘었다. 이로 인해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해설가를 희망직업으로 꼽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김민구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주어진 자리가 한정적이고, 해설가로 데뷔하기까지 굉장히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웬만한 각오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다른 진로를 찾는 걸 추천했다.
“해설가가 사실 전도유망한 직업은 아니에요. 주어진 자리도 굉장히 한정적이고, 제가 아마 비 선수 출신 해설의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선수 출신이 아니라면 웬만한 노력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해설로 데뷔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아야 하고, 기자나 코치, 에이전트 하다못해 블로그 등 커리어를 증명할 수 있는 게 필요해요. 해설로 데뷔한다 해도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은 경기를 배정받기까지 또 가시밭길을 걸어야 해요. 이 시간을 경제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준비도 돼야 하고, 직업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 외적으로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말 해설의 꿈이 있다면 최대한 일찍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늦은 나이에 데뷔했는데 항상 더 일찍 시작하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실패해도 타격이 없을 정도로 이른 나이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