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 산업의 `베트남 러시`가 그칠 줄 모른다. 일찍이 베트남 북부에 모바일 생산기지를 구축한 삼성전자는 증산, 증설로 외연을 확대 중이다. 남부 호찌민에는 별도 소비자가전(CE) 복합단지를 세웠다. 중국,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한국 생산 물량 일부까지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LG전자도 북부 하이퐁에 모바일과 가전, 부품을 아우르는 `캠퍼스` 체제를 구축했다.
베트남에 삼성, LG 같은 완성품 제조사가 투자를 이끌고 협력사가 동반 진출하면서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주요 협력사 대부분이 이미 현지에 진출했거나 신규 진출을 앞뒀다. 현지 진출 기업은 증설, 증산에 열을 올린다. 생산 비용을 아끼는 것은 물론 고객사 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대한민국 전자 산업 최대 생산기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가장 최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곳은 호찌민이다. 호찌민은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동집약형 경공업, 섬유 산업 투자를 집중했던 곳이다. 수도 하노이보다 개혁·개방 물결이 빨리 일어 우리 기업 투자도 그만큼 빨랐다. 미국-베트남 교역이 활황이었던 2000년대가 투자 붐이었다.
그랬던 호찌민이 삼성의 결정으로 또 한 번 활황을 맞게 됐다. 삼성전자는 호찌민 사이공하이테크파크(SHTP)에 무려 20억달러를 투자한다. SHTP에 위치한 CE복합단지는 TV는 물론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생산한다.
CE부문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와 생활가전사업부가 공존하는 셈이다. 삼성은 호찌민 CE복합단지 가동으로 모바일에 이어 가전도 `메이드 인 베트남` 시대를 열었다. 협력사 동반 투자가 줄을 잇고 있어 호찌민 경제 파급 효과가 더 커질 전망이다.
박상협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호찌민무역관장은 “호찌민은 원래 2000년대가 투자 붐이었지만 삼성전자 진출로 또 한 번 전기를 맞게 됐다”며 “삼성의 투자가 워낙 대규모인데다 협력사도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시 풍경이 바뀔 정도로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가전단지는 지난 8월 기준으로 궤도에 올랐다. 1차로 목표했던 품목이 모두 생산에 돌입했다. 3월 TV, 5월 세탁기, 8월 냉장고 생산을 시작했다. TV는 동남아 각지에 흩어졌던 생산 물량을 SHTP에 집중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생산 라인을 이전했다. 60인치대 대형 TV까지 호찌민에서 생산한다. 아세안 최대 TV 생산기지에 세탁기, 냉장고까지 더한 초대형 가전단지다.
삼성전자가 가전 생산 역량을 호찌민에 집중하면서 협력사에도 기회가 왔다. 적시에 호찌민 생산 물량을 잡으면 새 사업을 발굴할 수 있다. 호찌민 가전단지 조성에 따른 대표 수혜 기업으로는 인탑스(대표 김근하)가 꼽힌다.
합작사 플라텔 비나(VINA)가 호찌민에 진출했다. 인탑스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사출 부품 생산이 주력 사업이다. 인탑스는 모바일 기기, 플라텔은 가전에 들어가는 사출 부품을 생산한다. 지난해 현지 법인 플라텔 비나를 세우고 올해 가동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가전복합단지와 5분 거리에 사출 공장을 세웠다. 플라텔은 국내에서 냉장고, 세탁기 같은 생활가전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했다. 베트남에 진출하며 TV 부품을 추가로 수주했다.
전성교 플라텔 비나 법인장은 “삼성전자 가전단지와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면서 “명품에 준해서 생산한다는 목표로 고객사 대응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북부의 삼성전자 모바일 생산기지도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삼성 모바일의 `메이드 인 베트남`은 역사가 깊다. 삼성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이 한창이던 지난 2009년부터 박닌성 옌퐁 공단의 삼성전자베트남(SEV) 공장을 가동했다. 이어 2014년 타이응웬성 옌빈 공단에 삼성전자베트남타이응웬(SEVT)을 설립했다.
SEVT 가동으로 베트남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주력 생산 기지로 급부상한다. SEVT는 흔히 `삼성 베트남 1공장`으로 불리는 SEV보다도 규모가 크다. 삼성이 세계에서 운영하는 스마트폰 공장 중 가장 크다. SEV에 4만여명, SEVT에 6만여명이 근무한다.
두 공장 생산 물량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체 생산량의 40%를 웃돈다. 불과 1~2년 새 베트남이 중국을 제치고 삼성 스마트폰의 최대 생산기지로 떠올랐다. 옌퐁과 옌빈 공단 인근에는 카메라모듈, 회로기판(PCB), 렌즈, 케이스 등을 만드는 협력사가 즐비하다.
베트남 북부 모바일 생산기지는 향후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SEVT 투자 여력이 남았기 때문이다. SEVT는 1차(48만7000평), 2차(26만평) 부지에 생산동과 부품동 같은 공장동은 물론 식당, 기숙사, 오폐수 처리시설, 발전기까지 갖췄다. 2차 부지에는 아직 생산 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공장동, 유틸리티동 예정 부지가 남아 있다. 추가 투자가 이뤄지면 SEVT 생산 역량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베트남이 전자 산업의 핵심 제조기지로 부상하면서 수출 구조도 변했다. 2013년 이후 휴대전화 및 전자제품이 베트남 수출 1위 품목으로 떠올랐다. 농업과 경공업 중심 산업 구조가 기술집약형으로 바뀐 셈이다.
올해 초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가 하노이에 세우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 연구개발(R&D)센터 설립 계획을 승인하기도 했다. R&D센터가 설립되면 생산공장과 개발 조직 협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 고도화 정책을 펴는 베트남 정부에도 희소식이다. 생산 효율·고도화를 이루는 동시에 현지 경제에도 기여하게 된다.
삼성전자베트남(SEV) 소속 한 주재원은 “삼성은 80만~90만평 땅에서 베트남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올리고 있다”면서 “베트남의 생산 시설은 우리 기업의 제조 경쟁력뿐만 아니라 현지 경제 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호찌민(베트남)=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