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기가 정치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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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5일. 우리는 블랙아웃 전 단계인 순환정전을 겪었다. 국가 전력 수요의 빗나간 예측이 화를 불렀다. 정부가 전력 수요를 적게 예측하게 된 배경은 3차 전력수급계획으로 시끄럽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력수급계획은 수요 과다 예측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신규 발전소 건설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정치권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결국 국회의 압박에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발전소를 줄여 발표했다. 그리고 2011년 순환정전이 발생한다.

순환정전 이후 전력업계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 할 것 없이 순환정전에 대한 책임 추궁에 시달렸다. 국회는 이어진 국정감사에서 전력 당국을 몰아붙였다. 3차 수급계획 당시 국회가 발전소 감축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것은 완전히 잊혔다. 수요를 낮게 잡은 힘이 국회에 있었다. 그로 인해 5년 뒤 전력 부족 사태를 블랙아웃이 아닌 순환정전으로 만든 것은 전력 당국과 업계였지만 국회는 판사 위치, 전력 당국은 죄인 입장에 각각 섰다.

2006년 3차 전력수급계획 논란 이후 꼭 10년이 지난 올해 다시 전기에 대한 정치권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누진제 개편을 시작으로 전기요금 인하까지 앞다퉈 전기요금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이에 앞서 순환정전처럼 전기와 정치의 만남은 그리 좋은 궁합이 아니다. 국가 정책에서 국회와 정부는 상호 견제가 이뤄지는 저울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민생과 직결되는 전기는 항상 국회가 주도권을 쥐어 왔다. 이번 전기요금 개편 이슈에서도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주도권을 놓쳤다.

지금 전기요금 논란은 `국민이 마음 편하게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로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전기를 편하게 쓸 수 없는 곳이다. 이번 전기요금 개편에선 불합리한 것은 바꾸고 필요한 것은 추가해야겠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이번에는 10년 전과 똑같은 패착을 두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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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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