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잊힐 권리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로 `얼평` `몸평`이라는 단어가 있다. 각각 `얼굴평가` `몸매평가`의 줄임말로, 본인 외모에 대한 사진 등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제3자에게 평가받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검색 사이트에 `얼평` `몸평`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앳된 아이가 올린 사진 등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 사진, 동영상을 올려 본인을 표현하는 일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어린 초등학생도 각종 질문게시판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 본인의 외모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나중에 본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기억이 소멸하는 인간의 본성과는 달리 인터넷 기록은 잊히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

더 이상 밝히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 흔적이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영원히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상대방 정보가 궁금할 때 검색 엔진 사이트에 상대방을 검색해 보는 경우가 많다. 취업·승진 등과 관련해서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물로 개인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이 과거에 올린 게시물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취업이나 승진, 결혼 등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활발하게 게시물을 올리고 있는 아동이 성장했을 때 그 피해 사례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른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논의가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잊힐 권리`와 관련, 제3자가 나에 대해 작성한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지울 수 있도록 하는 권리가 주로 논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제3자가 올린 게시물이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게시물 삭제나 임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 수단이 이미 존재한다. 오히려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는 회원 탈퇴 등으로 게시물 관리권이 상실됨으로써 인터넷에서 지우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자기 게시물 관련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과거에 본인이 올렸지만 임의로 삭제할 수 없는 게시물에 대해 게시판 관리자 등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서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회원 탈퇴를 하거나 1년 동안 계정 미사용으로 회원 정보가 파기돼 본인이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회원 계정 정보를 분실해 본인이 삭제할 수 없는 경우, 자기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삭제가 안 되는 경우, 게시판 관리자가 사업 폐지로 사이트 관리를 중단해 삭제가 곤란한 경우 등에 대한 피해 구제가 가능해진다.

고인의 게시물도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고인이 미처 생전에 삭제하지 못한 게시물이 인터넷에서 영원히 검색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유족 등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접근 배제를 요청하면 고인의 게시물에 대해 접근 배제 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기술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얼평`이나 `몸평`같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의 평소 활동이 기록으로 남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용자가 겪는 사생활 침해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특히 인터넷을 놀이터로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방통위의 이번 가이드라인이 `잊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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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kjlee@kc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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