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상품을 둘러싼 2라운드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결합상품 논란은 `이동통신의 시장 지배력 전이`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SK텔레콤의 모바일 지배력이 유선·방송 시장으로 전이된다는 반SK 진영과 그렇지 않다는 SK군(SK텔레콤+SK브로드밴드)의 논리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올해는 이 같은 기본 논리 위에 케이블TV의 `동등결합`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됐다.
반SK 진영 일각에서는 이동통신 결합판매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하반기 통신방송 시장 최대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동등결합, 결합상품 최대 화두로
지난해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며 결합상품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결합상품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던 케이블TV와 이통사 간 M&A가 추진됐기 때문이다. CJ헬로비전뿐만 아니라 다른 케이블TV도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파급력이 큰 M&A였기 때문에 다른 통신사업자들의 관심도 온통 한 곳으로 쏠렸다.
결합상품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은 M&A 무산 직후다. 통신사와 합병 희망이 사라진 케이블TV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해졌다. 케이블TV는 대표단을 꾸려 SK텔레콤과 동등결합 논의를 시작했다.
케이블TV는 지난해까지 동등결합보다 `동등할인`을 강조했다. 상품별 할인율을 동등하게 하는 방식이다. 통신사가 결합상품에서 IPTV나 초고속인터넷을 사실상 무료 판매하면서 방송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판단했다. 통신사는 상품별 원가 분석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정부도 결합상품 제도 개선을 내놓았지만 동등할인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못했다.
케이블TV가 동등결합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케이블TV 상품과 통신사 모바일 상품을 묶어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월 결합판매 금지 행위 유형을 구체화하며 동등결합 여건을 마련했다. 하지만 세부 방식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어 케이블TV와 SK텔레콤이 협의를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케이블TV 상품과 자사 모바일 상품을 묶는 동등결합 상품 제공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금이나 상품관리 시스템 개발, 결합 형태와 상품별 할인율 정의 등 해결 과제가 많아 상품 출시 시점은 미지수다.
하지만 동등결합 의무 제공 사업자인 SK텔레콤을 통해 첫 상품이 출시되면 KT와 LG유플러스도 동등결합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 결합상품 없애자고?
동등결합 논의와 별개로 이동통신 결합상품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케이블TV는 유료방송발전방안 연구반에 이동통신 결합상품 판매 금지를 건의할 계획이다.
케이블TV 관계자는 “이동통신 시장 지배력이 방송으로 지속 전이되고 있어 근본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비대위에서 동등결합과 이동통신 결합상품 금지를 논의한 결과 명확한 입장을 정해 정부에 전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경쟁사 가운데 한 통신사도 이동통신 결합상품 금지 방안을 내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합상품으로 시장이 고착화된다는 판단에 따른 대책이다. 자사도 결합상품을 못 팔 수 있다. 하지만 할인 상품이 없어지면 수익성이 높아진다는 점, SK텔레콤의 동등결합도 막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논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결합상품 금지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법을 바꾼다면 결합상품 제도개선안, 결합판매 금지행위 고시 등을 내놓은 정부가 스스로 정책을 뒤엎는 격이 된다. SK텔레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아무리 시장 지배 사업자라 하더라도 결합상품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면서 “법령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고시 등 제도로 손을 봐야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논의는 이뤄진 바 없다”고 밝혔다.
◇시장지배력 전이 다시 불거져
결합상품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이동통신 시장지배력 전이 여부도 다시 주목받는다. 그동안 같은 통계를 놓고 SK 진영과 반 SK진영 간 엇갈린 해석이 충돌했다.
`2015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SK 진영 이동전화 결합 가입자 점유율은 51.1%였다. 2008년 29.8%보다 21.3%포인트 증가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절반을 차지한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이 다른 시장으로 전이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SK텔레콤은 결합상품도 이동통신 시장을 5:3:2 구조로 수렴하는 것일 뿐 지배력 전이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최근 10년 동안 SK텔레콤 이동전화 가입자와 매출액 점유율은 지속 하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발표된 `2015 방송시장 경쟁상황평가`에서는 이동통신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의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 점유율이 2012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 논란을 키웠다.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SK 진영은 결합상품을 통한 할인은 결국 소비자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반SK 진영은 SK텔레콤이 시장지배력을 키워 독점이 심화되면 폐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시장지배력 전이 여부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소모성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 결합상품 논란 역시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