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전기요금누진제 무엇이 문제인가-12년 묵은 제도 현실성 재검토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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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정치·사회권과 정부의 기 대결 양상으로 바뀌었다. 정치권은 개편 당론 채택과 재정안 발의, 사회권에서는 집단소송으로 각각 누진제 개편 공세 수위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 개편 계획이 없음을 못 박았다. 이 와중에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5%대로 떨어지면서 새 변수로 떠올랐다.

◇폭발한 反누진제 민심…꿈쩍도 않는 정부

지난달 한국전력공사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하고 지불하는 계통한계가격(SMP)은 ㎾h당 65.31원이었다. 2009년 7월 ㎾h당 66.39원 이래 7년 만에 가장 낮은 가격대다. 전력업계는 7월 SMP도 이보다 더 내릴 공산이 큰 것으로 봤다.

한국전력은 이렇게 싸게 전력을 구매해서 국민에게 전기를 판매한다. 그것도 독점 공급자다. 7년 만에 가장 싸게 구매해서 누진제 최고 단계를 기준으로 할 때 10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팔고 있는 것이다.

누진세 손질을 요구하는 쪽은 11.7배에 이르는 누진제 요금 배율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다. 현재 6단계로 구성돼 있는 누진제는 1단계엔 가장 높은 전기요금이 7350원에 불과하지만 6단계 구간은 가장 낮은 요금조차 13만7490원에 이른다. 1단계는 ㎾h당 60.7원, 6단계는 ㎾h당 709.5원 요금이 각각 책정된다.

이에 따라 6개의 누진 단계 가운데 1·2단계와 3·4단계를 각각 통합해 4단계로 축소하자는 등 개편안을 제안하는가 하면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단체소송에 들어갔다. 그동안 있어 온 누진제 논란과는 양상이 다르다. 그동안 누진제 관련 불만은 일부 피해 사례 정도였다면 지금은 사회 공론으로 형성됐다.

전방위 공세가 계속되면서 전력업계에서도 전력 당국이 누진제에 대한 고집을 꺾을 것으로 내다봤다. 9일 산업부가 누진제 유지 방침을 공식 선언한 것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선택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전력 당국 입장에서 누진제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공세를 벌이는 정치·사회권이 누진제로 인한 여름철 전기요금 폭탄에 주목했다면 수세에 있는 정부는 전체 1년 동안의 전기요금을 봤다. 일부 사용자들이 여름 한때에 평소보다 많은 전기요금을 일시 납부하는 것은 맞지만 1년 전체 전기요금을 놓고 보면 과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 원가 60% 수준의 요금이 부과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에너지효율화 에너지신산업,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누진제 요금은 성급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전력피크 상황도 변수다. 우리는 2011년 9월 15일 순환정전 실시 이후 2년 동안 전력 수급 위기 상황을 겪었다. 그 후 발전설비 대규모 건설로 한동안 전력 수급 안정화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불과 다시 2년 만에 공급력이 충분하다는 전력업계 전망에서도 수급 위기 직전 단계까지 전력 사용량이 늘고 있다.

김성열 산업부 전력진흥과장은 “최근 전력피크 등 수급이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다”면서 “여름철 한시성 요금 때문에 누진제를 개편하는 것은 큰 부담이 따른다”고 밝혔다.

◇12년 전에 짠 누진시스템 현실성 재검토는 필요한 시점

산업부의 철벽 방어에도 현실에 따른 누진제 검토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오히려 누진제에 대한 정부의 딱딱한 자세가 지금의 논란을 키워다는 시각도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석유 파동을 계기로 도입됐다. 주된 목적은 소비 부문에서 에너지 절약 유도, 저소득층 보호였다. 도입 당시 3단계 누진 구간과 누진율은 1.6배로 요금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석유 파동으로 1979년 12단계 누진 구간과 19.7배 누진율이 적용되면서 격차를 키웠다. 1988년에는 다시 석유가격 하락으로 누진율이 4.2배로 줄었다가 1995년 석유가격 상승으로 13.2배의 누진율이 적용됐다. 이후 몇 차례 변경 후 2004년 6단계, 11.7배 누진제가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자그마치 12년, 역대 누진제 변화 추이를 살펴봐도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는 체계다.

반면에 2004년 이후 소비자 전력 사용 패턴은 크게 변했다. 에어컨은 이제 가정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전기기가 됐다. 김치냉장고는 물론 때에 따라 냉장고를 두 대 이상 사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한 번 충전 하면 이틀은 쓰는 휴대폰도 이제 하루에 한 번 이상을 충전해야 하고, 사용 연령층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력 당국은 아직 다수의 소비자가 누진율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 300㎾h 이하 구간에 포진돼 있다는 논리로 유지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이와 달리 누진제 때문에 쓰고 싶은 전기를 참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전기요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석유가격이 저점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전기요금은 별 변화가 없었다. 여기에 지난해 여름 한시나마 일부 누진제 구간을 통합한 조치도 올해는 시행되지 않으면서 사회 불만을 키웠다.

산업용과 일반용·주택용 등 용도별 전기요금 간 형평성도 누진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란거리다. 현재 누진제는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고 있다. 반면에 국가 전력사용량 대부분은 산업계와 상가 등에서 소비되고 있다. 올해 2분기 전력소비 현황을 보면 산업용 695억㎾h, 240억㎾h, 주택용 156억㎾h로 산업용과 일반용에서의 소비가 주택용의 6배에 이른다.

누진제와는 다르지만 산업용과 일반용에도 `초과사용부가금`이라는 추가 과금제도가 있다. 사업자가 한전과 계약한 전력보다 많은 전력을 사용하면 계약 위반에 따라 위약추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계약 전력을 1회 초과 시 경고를 주고, 2회 초과 시부터 150%에서 250%까지 추징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초과 사용 부가금은 엄연히 계약 전력을 위반한 상황이고, 누진제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몇 배로 커지는 구조여서 절대 비교가 힘들다.

전력 업계는 정부가 누진제를 유지하더라도 지금 전력 사용 패턴과의 정합성을 따지고 전체가 아닌 특정 기간에서 소폭 조정 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전력 업계 관계자는 “누진제에 소득 재분배와 피크 조절 성격이 있다 해도 지금은 이보다 편하게 전기를 쓰지 못한다는 불만과 산업계 요금을 일반 소비자가 보전한다는 불평등 감정이 더 크다”면서 “적어도 지금의 누진 구간이 실제 사용자 전기 소비 패턴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