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구 SBA 일자리전략팀 팀장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그러면 스스로 배를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얘기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포기한 필자에게 수학 선생님은 끝까지 바다를 얘기 하지 않으셨다. 배에 들어갈 지도 모르는 나사 만들기에 몰입시켰던 그 선생님의 엄숙한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수학에 학을 뗀 고등학생이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2016년. 대한민국의 바다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동경하며 이렇게들 달리고 있을까?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김현철 교수는 “한국은 2018년 이후로 인구절벽에 접어들게 되고 인구절벽이 시작되면 경제 저성장의 기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년째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는 일본의 수순을 밟게 되거나 더 나빠질 결정적인 요인이 될 인구절벽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바다는커녕 절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이 인구절벽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일자리 문제일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니, 연애는 물론 결혼과 출산 모두를 포기하는 이른바 9포 세대가 대세를 이루게 되고, 결국 인구절벽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 문제가 현재 21세기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0.9%로 46만7000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월 기준 영국의 청년실업률 5.6%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두 나라의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이 ‘핀테크(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 및 산업)’ 등 미래산업의 성장 및 창업 지원정책을 적극 펼치는 데 기인한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국과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영국이 미래산업에 투자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때, 분단 현실로 섬나라 형국인 2016년 대한민국에는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는 ‘공시생’이 45만 명이다. 엄청난 수의 청년들이 미래가 아닌 안정에 투자하고 있다. 2016년 공무원 신규채용은 2만5000명이다. 결국 42만5000명은 또다시 미래가 아닌 안정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배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바다를 가고 싶은가? 혹은 바다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고등학생의 필자처럼 나사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는 현재고 바다는 미래다. 인류는 현재를 담보로 미래에 도전하며 생존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지금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미래에 투자하지 않고, 미래주역인 청년들은 미래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얼마 전 대학 선배 한 분이 삼수 끝에 대학에 진학한 후 부진한 학업성적 등으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카의 취업을 부탁해왔다. 만나보니 나름 진정성이 느껴져서 10번 가까이 만나면서 면접코칭 및 경력컨설팅을 한 후 서울의 한 강소기업에 추천을 했고, 필자를 잘 아는 이 기업 CEO는 면접 후 채용을 결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청년이 본인의 기대와 100만원 차이나는 연봉을 이유로 입사를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다고. 해당 기업 CEO는 왜 저런 사람을 추천했냐고 필자를 원망했다. 난감했다.
이태백(20대의 태반이 백수)이니 이구백(20대의 구십%가 백수)이니 하는 와중에 그 청년은 왜 건실한 강소기업에의 입사를 포기했을까? 처음에는 다른 기성세대들처럼 필자도 그 청년의 근시안을 원망했다. 그러나 순간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의 엄숙한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나도 혹시 그 청년에게 쓸모도 알 수 없는 나사를 만들라고 한 것을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들어가서 경험을 하다 보면, 월급도 올라갈 것이고 아니면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자리로 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필자가 그 청년의 입장에 있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니 자신 있게 “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청년은 그 청년 나름대로의 잣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처럼 바다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을 해 준 필자나 또 면접을 보신 CEO도 미래가 창창한 그 청년에게 바다(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채 나사(밥줄)의 중요성만 강요한 것이 아닐까? 그 결과 그 청년은 바다에게도 나사에게도 관심을 잃어버린 채 지금은 어디에선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며 와신상담하는 공시족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구절벽이라는 최대의 위협을 맞이한 대한민국, 우리의 선택은 청년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배(직업)를 만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나사만을 강요한다면 그들은 바다도 배도 잊어버린 채 우리를 인구의 절벽으로 인도하는 퍼스트 레밍이 될 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바다를 동경하게 하자. 영국과 같이 바다(미래산업)에 투자하고, 청년들 스스로가 멋진 배(미래직업)를 만들게 하자. 퍼스트 펭귄이 되어 절벽을 넘고 바다로 가게 하자. 그런 다음 그 바다에서 우리 모두가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풍요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보자.
21세기 대한민국의 퍼스트 펭귄이 될 청년들을 위해 필자가 몸담고 있는 SBA는 온라인 채용플랫폼인 서울기업 공동채용관을 만들어, 오랜 기업경력과 채용경험을 가진 소셜헤드헌터(사회적 역할을 지향하는 전문면접관)들과 함께, 서울 기업들의 비전과 경영철학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연결해주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 구직자들 스스로 바다를 발견하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서, 절벽을 넘어 힘껏 노저어서 그 바다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들의 건투를 빈다.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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