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나라를 빼앗겼던 비극적인 역사 속, 망국의 황녀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덕혜옹주’는 역사 속에서 잊혀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일생을 담았다.
덕혜옹주는 고귀하게 태어나 고종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잠시 동안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냈지만, 고종의 승하 이후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된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일제는 그가 만 13세가 되던 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보냈고, 일본 백작과 결혼을 시킨다. 이후 그는 해방이 된 후에도 입국하지 못했고, 1962년이 되어서야 겨우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던 시절, 그중에서도 덕혜옹주의 삶은 처참할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그는 조선의 옹주로서 위엄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조선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한 여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런 덕혜옹주의 삶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인 권비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소설 속 몇 장면을 달리 바꿔 영화의 묘미를 살렸다.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만 더 크게 살려낸 것은 윤제문이 맡은 한창수와 박해일이 맡은 김장한 캐릭터다. 덕분에 한창수는 덕혜옹주와 대립하며 극적인 효과를 만들었고, 김장한은 덕혜옹주를 평생 지키는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활약한다.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고종은 김윤식이 맡아 영화의 무게를 잡아주고, 덕혜의 아역을 맡은 김소현은 기모노를 입는 한 신만으로도 나라를 잃은 비통함을 잘 살려냈다. 이외에도 중간쯤부터 등장하는 고수, 김대명, 김재욱 등도 극의 분위기에 잘 스며든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손예진과 박해일의 노인 연기다. 보통 젊은 배우가 노역을 할 때는 단순히 노인 분장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손예진과 박해일은 디테일한 노인 연기를 해냈다. 이제 낯설지 않은 박해일이 노인 연기는 둘째치더라도, 실제로 할머니가 된 듯한 손예진의 굽어버린 등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의도적으로 절제한 신파가 긴 여운을 남긴다. 덕혜옹주, 이덕혜의 운명을 한 번 쯤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