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크]파괴되기 위해 제작되는 수억원 짜리 인형 `더미`

완성차 회사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는 혹시나 모를 사고에서 탑승자들이 어떠한 피해를 얼마나 받는지를 알아보고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충돌 시험을 진행한다. 이 때 사람이 직접 충돌시험을 진행할 수 없으므로 마네킹이 운전석에 앉는다. `더미(Dummy)`라고 불리는 이 마네킹은 일반 백화점 매장에서 의류 전시를 위해 사용하는 일반 마네킹과는 성능부터 가격까지 비교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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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충돌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슬레드 시험`에 `더미`가 투입되고 있다. (제공=현대모비스)

더미는 최대한 인간을 닮고자 무게와 키를 인간 체중과 신장에 비슷하게 맞추고 있다. 또 몸 전체를 구성하는 각종 뼈는 금속성 구조물로, 외부는 근육과 비슷한 고무로 둘러싸인 알루미늄 재질로 돼있다. 심지어 피부는 플라스틱과 비닐로 제작돼 사고 시 피부 상에 나는 상처도 측정할 수 있다.

더미는 외형뿐 아니라 내부구조도 사람과 흡사하게 제작돼 사고 시에 탑승자가 받는 충격을 섬세하게 가늠해낸다. 신체에는 충격량을 측정하는 정교한 감지기가 장착돼 사고 시에 각 부위에 얼마만큼 충격량이 전해지는지 측정한다. 더미가 받는 모든 충격은 컴퓨터에 기록되기 때문에 공학자들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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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충돌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슬레드 시험`에 `더미`가 투입되고 있다. (제공=현대모비스)

더미 시초는 1945년 미국에서 군용 전투기의 비상 탈출용 좌석(시트)을 시험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후 자동차 전용 충돌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더미는 1950년대 초 앨더슨연구소에서 제작한 `VIP 50`이었다. 이후 더미 크기와 측정 방식 등 기준이 달라지면서 1971년 제너럴모터스(GM)가 `하이브리드Ⅰ`을 개발했다. 1972년에 유연한 관절을 가진 `하이브리드Ⅱ`, 1976년에 `하이브리드Ⅲ`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이브리드Ⅲ는 △신장 175㎝, 몸무게 78㎏ 보통 남성 △신장 188㎝, 몸무게 101㎏ 거구 남성 △신장 152㎝, 몸무게 54㎏ 보통 여성 △어린이 △유아 등 다양한 크기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메르세데스-벤츠는 보행자 추돌사고 시험을 위한 `보행자 더미`를, 볼보자동차는 임산부 더미와 캥거루 더미를 각각 개발했다.

자동차 회사는 많은 종류의 더미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폭넓은 충돌시험을 통해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측정하고, 효과적 승객 보호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더미 기준은 용도에 따라 국가별로 법규를 달리해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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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충돌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슬레드 시험`에 `더미`가 투입되고 있다. (제공=현대모비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인형으로 표현되는 더미 가격은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연령별로 구분해 더미 가족을 구성한다고 치면, 그들의 몸값만으로도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은 되는 셈이다.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자동차 충돌시험에 한 번 투입됐던 더미를 바로 폐기처분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충돌시험을 해도 차는 부서지지만 차 내부의 더미는 완전히 부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미는 손상된 부속품을 교체하고 센서를 장착해 재사용하고 있다.

더미 몸 안에 장착되는 수많은 센서들은 충돌할 때 충격량을 측정하고, 그 충격량은 더미의 상해치를 결정하게 된다. 즉 최대 100여개까지 장착되는 이 센서를 통해 더미의 상해치가 매겨지고, 이는 곧 별 4개 혹은 5개 식으로 표기되는 신차 충돌 테스트 등급으로 나타나게 된다.

최근에는 더미의 비싼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충격 정도를 파악한 후 실물 시험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경우 더미 훼손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하는 시험과정을 대폭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종은 자동차 전문기자 rje31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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