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발사 일정 10개월 이상 연기…항우연 19년째 개발 못해
한국형 우주 발사체(로켓) 시험 발사 일정이 10개월 이상 늦춰진다. 10개월 이상 연기되면 인건비 등 200억원가량 국민세금을 추가해야 한다. 2020년 달 탐사 등 우주개발 로드맵도 바꿔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미 상당수 국가에서 대중화한 액체로켓 기술을 19년째 개발하고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항우연의 `만만디 기술 개발`, 미래창조과학기술부의 `관리 부재`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17일 항우연,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미래부 차관 주재로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를 열고 2017년 12월로 정해진 한국형 발사체(KSLV-Ⅱ) 시험 발사 일정을 10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관련기사 4면
최종 결정은 미래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참석하는 우주위원회에서 내려질 예정이다. 연기 이유는 발사체 엔진, 산화제 탱크 등 핵심 부품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시험 발사가 늦어지면 2020년을 목표로 한 `한국형 발사체 본 발사`와 `달 탐사` 일정도 연기해야 한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KSLV-Ⅱ` 프로젝트에는 2017년 시험 발사를 시작으로 △2019년 12월 1차 발사 △2020년 6월 2차 발사 △2020년 달 탐사 계획이 들어 있다. 정부는 2010부터 2021년까지 2조원에 가까운 총사업비 1조9572억원을 배정했다. 국내 연구개발(R&D) 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로 꼽힌다.
미래부(옛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는 1997년부터 국내 액체 엔진 발사체 사업 `과학로켓 KSR-Ⅲ`를 시작으로 19년째 개발 중이다. 선진국이 50~60년 전에 개발한 기술로, 과학기술계에서는 사실상 공개된 기술로 평가한다.
2010년부터 7년 동안 연구한 로켓 시험 발사 일정이 1년 6개월 남은 상황에서 연기 방침이 결정되자 과학기술계 안팎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무리한 계획을 잡은 것인지 개발이 너무 느슨하게 진행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본부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나로호 때 사례를 보면 사업비 증액이 어렵다”면서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건비가 부족해 한국형 발사체 사업이 시작되자 한국형과 나로호 일을 병행하며 인건비를 충당했다”고 전했다.
로켓 발사 시험 일정이 늦어져 인건비가 부족하면 나로호 때처럼 다른 프로젝트로 인건비를 충당할 가능성이 크다. 1년 연기하면 연구원 200명의 인건비 약 200억원이 추가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발사체 개발 순연으로 파생되는 기회비용도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항우연은 국내 기술로 우주 발사체가 필요한 이유로 국가 위상 강화와 국내 인공위성 발사 때 해외 발사체를 이용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우리나라는 발사체가 없어서 나로호 과학위성을 제외한 위성 발사 때 모두 외국 발사체를 이용했다. 위성은 무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가벼운 위성은 200억~300억원선, 무거운 위성은 400억~500억원 이상이 든다.
문제는 2020년 이후에 변화하는 글로벌 상황이다. 미국 스페이스X는 발사체를 10번 재사용하고 발사비용을 100분의 1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가격은 러시아 발사체 비용만큼 저렴해지고 있다. 2018년부터는 유료 비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 수백억원을 주고 우리나라 발사체를 이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항공우주업계 관계자는 “SKT나 KT 등이 통신 위성을 발사하려고 할 때 가격이 10~20배 비싸고 실패 확률이 높은 우리나라 발사체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면서 “훨씬 저렴하고 성공률이 높은 외국 발사체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에만 허용되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놓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해외 발사체 시장이 저가로 빠르게 안정되면 우리가 진입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진국은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에너지 고갈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우주 기반의 태양광발전 연구도 시작하고 있다”면서 “발사체 기술을 빨리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 에너지원으로 우주 태양광 발전을 개발하는 클럽에 우리나라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