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은 늘 충돌한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갈등한다.
KT와 금호전기도 순간의 선택이 사운을 갈랐다. 왕년에는 절대 강자였다. KT는 `초고속인터넷`, 금호전기는 `번개표`로 각각 통신과 형광등 시장을 평정했다. 위기는 주력 산업의 침체기에 찾아왔다. 두 회사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KT는 금융, 부동산, 렌터카 등 이종시장으로 사업을 넓혔다. 금호전기도 발광다이오드(LED)칩, LED패키징 등 `신천지`에 승부수를 던졌다. 신사업이 성공하면 기업가치가 갑절로 늘어날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꿨다.
결과는 참패였다. 신사업은 부실덩이가 됐다. 핵심 역량을 엉뚱한 곳에 투자하다 보니 주력인 통신과 조명 사업도 덩달아 망가졌다. 창사 이래 첫 적자라는 충격의 성적표가 나왔다. KT는 최고경영자(CEO)가 바뀌었다. 금호전기도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해법은 `주력 사업의 경쟁력 회복`이었다. KT는 `기가인터넷`, 금호전기는 `LED 조명`을 각각 대항마로 내세웠다. 천신만고 끝에 KT는 지난해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금호전기도 올 1분기 영업이익 9억원으로 적자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하지만 희생이 너무 컸다. 직원 수천명이 회사를 떠났다. 주력 시장 점유율에서도 밀렸다.
정부가 `국가전략프로젝트(가칭)` 대상 과제 선정을 눈앞에 뒀다. 인공지능(AI), 스마트카, 탄소자원화, 정밀의료기기 등 4대 분야로 압축됐다. 그림은 좋고 산업 전망도 밝다. 성공하면 한국경제는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이상적이어서 불안하다. KT와 금호전기가 겹쳐진다. 과연 우리가 AI나 스마트카에서 미국을 제칠 수 있을까.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등 쟁쟁한 기업들이 일찌감치 천문학 규모의 돈을 쏟아부었다. 100m 달리기 경주로 치면 10~20m 정도 앞서 있다. 더욱 불안한 이유는 아랫돌을 빼내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식 예산 편성 탓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등 주력 산업의 연구개발(R&D) 예산이 크게 줄었다.
세계 1위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산업은 위태하다.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략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주력 산업마저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범하는 오류가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은 새로운 분야여야 한다는 착각이다. AI, 스마트카 등 뉴 비즈니스가 더 매력을 끄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 보니 아직 개척할 여지가 많은 주력 산업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반도체 산업만 봐도 아직 반쪽짜리 강국이다. 한국은 메모리만 세계 1위다. 메모리만큼 큰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여전히 마이너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도 20% 정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 분야에 도전하면 AI나 스마트카보다 승산이 높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정 기술력은 이미 확보했기 때문이다.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일개 기업의 비전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고 추진해야 하는 전략이다. 현실성 있고 좀 더 세세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우리의 핵심 역량을 냉정하게 따지는 것이 먼저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부터 구분하자.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잃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