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권이 할일, 국가가 할일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 논의가 시작됐다. 국회의장은 개헌은 “논의 대상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며 20대 국회 내 처리 의지를 밝혔다.

국민 70%가 개헌에 공감한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그만큼 지금의 정치 구조에 대한 피로감이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중임제 등 개헌 방향에 대해서는 여야 간 입장차를 보이고 있지만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개헌 논의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의문이 든다. 정말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다양한 문제가 정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일까? 개헌만 하면 지금의 소모성 정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의 문제를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지도자 한 사람의 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과 연결돼 왔다. 긍정보다 부정 측면이 더 두드러지면서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해 지역 간, 세대 간의 편 나누기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는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정책은 아예 태생조차 불가능할지 모른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나오는 정책 키워드도 이런 폐해에서 비롯된다.

이전과 다른 치적을 만들어야 하는 새 정권은 이전에 없는 것을 내세워야 했다.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면 포장이라도 그럴싸해야 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이전 정권의 꼬리표가 붙으면 가차 없이 용도 폐기했다. 새로운 자리에는 그 정권의 새로운 키워드가 자리했다. 그 폐해는 이미 세 살배기도 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권별 정책 키워드는 매번 바뀌었다. DJ정부 벤처, MB정부 녹색성장, 현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졌다.

정부 조직 또한 매번 이에 맞춰 대변신한다. 과학·정보통신 분야는 이런 유탄을 매번 맞아야 했다.

최근 투자회사 대표와 만나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긴 대화가 이어졌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현재 벌어지는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는 결국 `정권이 할 일과 국가가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의 성공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고민했다면 지금 겪는 어려움을 좀 더 수월하게 겪어 낼 수 있었을 것이란 가정도 덧붙여졌다.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 속성이나 자신의 치적을 쌓고 싶은 위정자의 생각도 모르는 바 아니다. 십분 이해한다.

단지 그에 대한 평가를 반드시 단기간 내에 보상받으려는 생각만은 버렸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권이 할 일과 국가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이 구분될 것이다.

최근 벌어지는 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경기 민감 업종으로 분류돼 구조조정 여파를 겪고 있는 조선·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예견된 사안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폭탄 넘기기`로 그 화를 키워 온 측면이 크다.

`위기 신호가 왔을 때 선제 대응했다면`이라는 가정이 못내 아쉬운 이유다. 또다시 몇 년 뒤에는 `그때 그랬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질 않았으면 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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