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2월 26일 발생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는 재난 대응과 대비계획 부재가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 준다. 수마트라 안다만 해저 지형의 단층 붕괴로 촉발된 대규모 지진해일로 30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100만명이 넘는 이재민도 발생했다. 당시 지진해일 전조인 바닷물이 빠지는 현상이 발생했음에도 대피 경보도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조차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유엔의 도움으로 지진해일 조기 경보시스템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해저 센서에서 지진해일이 감지되면 재난방재센터는 심각성을 판단, 예·경보를 발령한다. 스마트폰으로도 지진해일 정보를 수신해 위치와 상관없이 주민 스스로가 안전 조치를 취한다.
재난 전문가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설치됐더라면 당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을 접목하면 재난을 줄인다는 것을 잘 보여 준 사례다.
재난 분야에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과거부터 있었다. 국민안전처 출범 이후 더욱 탄력을 받았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센싱 기술을 통한 재난 감지, 빅데이터와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한 재난 예측, 스마트 기기와 자율비행로봇(UAV) 등 스마트 재난 대응까지 다양한 기술이 연구개발(R&D) 사업 또는 미래성장동력 사업으로 개발된다. 화재진압용 로봇 개발도 지능형 로봇사업에 포함돼 앞으로 소방관 진입이 곤란한 극한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하다.
재난관리 분야 석학인 마크 앱코비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는 수마트라 지진해일 사례 분석을 통해 `재난은 재난에서 배운다`라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그는 각종 재난사고 사례 분석으로 재난사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즉 모든 재난사고 정보를 모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재난 발생 경향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면 사고를 대폭 줄인다고 강조했다.
올해 국민안전처가 재난사고관리 운영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목적이 이것이다. 이 사업으로 정부기관, 공공기관 등에 흩어져 있는 각종 사고 관련 자료를 모은 재난사고 빅데이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 구축된 자료를 시각화와 통계 처리로 재난사고 발생 경향과 원인을 분석, 재발 방지에 활용한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수많은 재난사고 원인을 일일이 분석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사고조사 전문가가 심층 분석을 수행하지만 방대한 재난사고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된다. 컴퓨터가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고 원인을 밝히고, 재난을 미리 감지·예측하고, 대응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 AI가 재난사고의 혁신 해법으로 떠오른다.
미래 재난은 점점 불확실하고, 복합 성격을 띠며, 대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학기술 역량을 총동원한 혁신 접근법이 필요하다. 범죄 수사에 대전환점을 가져온 DNA 유전자분석 기술처럼 AI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어 이제까지 보지 못한 혁신을 가져온다.
국민안전처에서 올해 구축하는 재난사고관리 운영지원시스템에는 재난사고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AI 분석 기능을 탑재한다. 씨맨틱, 온톨로지, 딥러닝, 신경망을 포함한 컴퓨터 AI를 구현해 재난사고를 분석하는 전문가와 함께 과학적 사고 원인 분석을 수행한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재난사고 원인을 밝혀서 재난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수립에 반영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의 안전사고 사망률 달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iy713@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