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공천은 `알파고`에 맡겨야 합니다.”
택시 기사의 농담에 헛웃음이 터졌다. 인공지능(AI)이면 불편부당한 공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AI가 발달하면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단다. 그 가운데 공천위원장도 포함된다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알파고 신드롬이 유쾌한 상상을 자극한다. 만약 나랑 똑같은 AI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지금 쓰는 이 글도 큰 틀만 잡고 로봇에게 맡기면 된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주 5일 근무가 아니라 주 2일 근무만 해도 되는 날이 온다. AI가 창출할 막대한 부를 고루 나눌 수만 있다면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AI발 제4차 혁명은 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삶은 AI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뉠 것이다. 부의 독점만 해소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 AI 기술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경쟁력도 천양지차로 벌어진다. 늦었지만 AI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우리 정부도 앞으로 5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고무되는 소식이다. 문제는 전략이다. 정책만 있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지금부터 AI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구글이나 IBM과 같은 글로벌 소프트웨어(SW) 강자를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회의감이 든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려면 `급소`를 공략해야 한다.
`알파고`의 아버지는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천재 개발자다. 그렇지만 허사비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알파고`는 여러 `아버지`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알파고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근원을 알아야 급소를 찾을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알파고의 능력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1200대 컴퓨터의 연산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공관 수천개를 붙여 만든 에니악은 웬만한 빌딩 크기였다. 연산 능력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펜티엄급 노트북의 수만분의 1도 안됐다. 진공관 컴퓨터로 `알파고`를 만든다면 서울에 있는 모든 건물을 `에니악`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이다.
크기와 부품 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반도체 집적회로(칩)였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말단 사원이던 잭 킬비는 손톱만 한 칩 하나에 전자회로를 올리는 아이디어로 노벨상까지 받았다. 혁명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손바닥만 한 전자계산기가 개발됐고, 퍼스널컴퓨터(PC)도 탄생했다. 지금 쓰는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심지어 인터넷도 뿌리는 반도체다.
알파고는 에니악과 비슷하다. 이세돌 9단을 이기기 위해 1200대의 컴퓨터를 돌린다. 전력 소모량도 대국 한 판에 170㎾를 소모한다. 가정집 한 달 전기사용량을 훌쩍 넘는다. AI가 실용화되려면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AI에 최적화된 칩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이 개발되면 스마트폰에서도 `알파고`를 돌릴 수 있다.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이 발벗고 나서야 하는 분야다. SW 프로그램을 구글과 IBM에 내주더라도 칩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AI 시대, 용의 머리가 될 것인가 꼬리가 될 것인가.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승산 높은 정책에 베팅해야 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