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특별좌담회]새로운 시대 준비하는 `빅디자인`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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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세돌 대국 장면 <전자신문DB>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국으로 인공지능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인공지능이 먼 미래가 아닌 우리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이라는 이벤트에 묻혀 인공지능이 가져올 산업기술 발전과 사회문화 변화에 고민과 성찰이 부족하다. 전자신문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변화상을 논의하고 발전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인공지능에 몸담은 각계 전문가 한자리에 모였다. 알파고 대국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알아봤다. 인공지능 사회가 가져올 편의성, 부가가치 창출 등 긍정적 측면을 논의했다. 반대로 일자리 문제, 기술 리스크 증가 등 부작용 담론도 간과하지 않았다. 국내 현실도 되돌아봤다. 장기적 투자, 선택과 집중 등 향후 발전 계획과 조언도 들어봤다.

▲참석자(가나다순)

△서병조 한국정보화진흥원장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이상호 카카오 추천팀장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사회=윤대원 전자신문 SW콘텐츠부장

◇사회(윤대원 전자신문 부장)=먼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정체가 궁금하다. 어느 누구도 인공지능이 이렇게 빨리 바둑 최고수 수준으로 올라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알파고의 기술적 강점은 무엇인가.

◇장병탁(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알파고는 바둑을 위한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 연구가 게임을 대상으로 한 것은 50년대부터다. 게임 특징은 문제가 어려우면서도 정의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작동방식에서 게임은 다른 문제와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게임은 여러 번 결정을 잘해야 한다. 한 번만 잘못해도 결과가 달라진다. 주식투자와 비슷하다. 장기적으로 수익을 많이 내는 정책을 취할 수도 있고, 단기 수익을 얻고 빠지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바둑에도 전략이 들어간다. 단순히 한 부분에서 잘하는 게 아니라 전체에서 이겨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고 순차적 의사결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많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탐색하기 어렵다.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함수를 사용한다. 정책망은 어디로 가야할지 후보를 선정한다. 가치망은 후보 중 어느 게 얼마나 좋은지 가치를 정한다.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라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은 그동안 실력 있는 바둑기사 데이터(기보)를 꾸준히 학습해 사람의 감과 직관까지 추가로 익혔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 입장에서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알파고 대국에서 여러 기풍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알파고라는 상대가 어떤 때는 A처럼 두다가 B처럼 두기도 하고, 또 다시 전혀 다른 F처럼 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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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왼쪽)과 데미스하사비스 딥마인드 CEO(오른쪽) <전자신문DB>

◇이경일(솔트룩스 대표)=인공지능은 집단지성만으로는 2단 수준에 불과하다. 강화학습으로 연습한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전 사람들이 했던 것뿐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재학습해 전에 없던 결과를 얻었다.

대국에서 바둑 전문가가 보기에 알파고는 굉장히 특이한 수, 새로운 수, 일반적으로 두면 안 된다는 수를 뒀다. 이 수는 스스로 강화학습하면서 끝까지 계산해 본 수다. 인간은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 시작은 집단지성으로 했지만 알파고가 인간과 대등한 수준이 된 것은 강화학습 때문이다. 아마 6단 1000명이 같이 한다고 해도 이세돌 9단을 이길지 모르겠다. 집단지성에 의존했지만 강화학습이 더해져 결국 집단지성을 이겨낸 것이다.

◇사회=인공지능 중요한 기반 기술이 빅데이터 분석이다. 빅데이터 관점에서 알파고를 바라본다면 어떤가.

◇이경일=알파고가 사용하는 데이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데이터는 바둑 규칙이다. 그 규칙을 프로그램으로 짠 것도 있고 학습시킨 것도 있다. 이것은 빅데이터라고 볼 수 없다. 두 번째는 많은 선각자의 기보다. 이것이 집단지성에 해당하는 데이터다. 세 번째가 자기 스스로 생성해 낸 데이터다.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기존에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IBM 왓슨도 하지 않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기존 인공지능 사업은 지금까지 데이터를 학습하거나 기존 데이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빅데이터였다. 알파고는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하는 게임으로 데이터를 생성하고 다시 학습을 반복한다.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를 직접 학습하고, 싸워서 지면 소멸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알고리즘은 바둑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사회=인터넷과 모바일 분야에서 인공지능 활용 현황이 궁금하다.

◇이상호(카카오 추천팀장)=이미 인터넷 서비스에 인공지능 기술이 많이 적용됐다. 일반 이용자는 잘 모른다. 카카오도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사람이 하나하나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카카오에서 음성인식과 추천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다음 사이트에 ‘썸네일’이라는 작은 이미지가 있다. 그것을 클릭하면 더 큰 원본 이미지가 보인다. 원본 이미지를 썸네일 이미지로 만들 때 어느 부분을 캡처해 보여줄지 결정할 때 인공지능 기술을 쓴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이미지가 너무 많아 인간이 수동으로 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이미지라면 얼굴 위치를 찾아야 한다. 얼굴 위치를 작게 잘라내 보여줘야 한다. 두 명이면 둘 얼굴을 모두 찾아서 잘라야 한다.

카카오는 알파고가 쓴 컨볼루션 신경망을 똑같이 쓴다. 인공지능으로 눈, 코, 입을 다 찾는다. 이미지에서 어느 부분이 강조된 것인지도 찾아낸다. 이런 것들을 기계가 터득하게 한다. 사람이 수동으로 자른 것과 원본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알파고와 같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용해 구현한다.

◇사회=알파고 등장에 따른 사회, 산업적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는 무엇인가.

◇서병조(한국정보화진흥원장)=이세돌-알파고 대국으로 올해가 지능정보사회 원년이라는 것을 전 국민이 실감했다. 10년 정도 엄청난 돈을 들여 설득할 것을 한 번에 다 보여줬다. 인공지능 사회라고 하면 일부 부정적 이미지가 있어 지난해 말부터 지능정보사회라고 불렀다.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능정보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산업적으로 어떻게 할지 꾸준히 준비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마찬가지다. 올해 지능정보사회 원년으로 만들 계획을 준비 중이다.

지능정보사회는 최근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사회다. 인공지능 기반 기술혁신이 산업· 고용·서비스·삶의 방식 등 경제사회 전반에서 근본적 혁명을 유발할 것이다. 알파고가 보여준 것이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면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핵심은 기존 제조업, 서비스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에 있다.

실제 한국은 노동시간이 굉장히 많다. OECD 기준과 비교해 노동시간이 많은데 시간당 생산성은 좋지 않다. 정보화가 개인적 활용에서 앞서갔지만 우리나라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생산성을 올리고 노동시간은 줄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자리 문제도 이런 식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비숙련 노동자는 줄겠지만 숙련 노동자는 더 필요할 것이다. 산업간 울타리를 허물고 사업영역을 파괴하며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창출한다. 인공지능은 산업 발전과 인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이용된다.

예를 들어 양봉업자라면 특정 질병에 유효한 꿀을 만들어내는 ‘메디컬 양봉’을 시도할 수 있다.

◇이원태(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공지능은 산업·사회적 파급효과가 굉장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긍정적 측면은 제품이나 서비스 질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IT서비스, 헬스케어 등 다른 산업과 접목되면 생활 편의성을 높이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최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인공지능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벤처와 인공지능 생태계가 활성화되면서 긍정적 효과가 나올 것이다.

의사결정 방식이나 삶의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인공지능이 업무를 대체하면서 여가시간이 늘어나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한다.

복지 서비스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지만 협업도 간과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협업도 모색할 수 있다.

◇사회=분명 반대급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우려되는 사안은 무엇인가.

◇이원태=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거나 경쟁을 하면서 사라지는 것, 위협이 되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일자리 문제다. 직업이나 직무가 대체되면서 오는 충격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할 때도 비슷했다. 인공지능이 중산층 공백화를 촉진할 것이다. 노동시장 자체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킨다. 인공지능을 적극 수용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양극화, 부의 집중을 초래한다. 사회 전반에서 불평등 심화가 걱정된다.

개인정보, 사생활 침해 위험 증가도 문제로 거론된다. 인공지능이 나중에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증 근저에는 개인정보 유출·남용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가 증대할 것이다. 과거 미국 뉴욕증시가 갑자기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6시간 만에 2조달러가 사라졌다.

연방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초단타 매매를 기본으로 하는 자동화시스템이 서로 경쟁하듯 주식을 팔고 사면서 나타난 시스템 오류였다. 대비가 없다면 사회·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서로 경쟁하면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한 통제, 인공지능 민주화 공유화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병조=지능정보사회가 되려면 데이터 신뢰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데이터 신뢰성이 확보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적절한지, 이것을 실어 나르는 인프라가 신뢰할 만한지 먼저 짚어봐야 한다. 데이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인프라 모두 신뢰성이 없다면 사회악이 된다. 이 경우 지능정보사회로 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만드는 셈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이 100%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상용화가 힘들다. 의료 측면에서도 인공지능에 진단 책임성을 부여하려면 정확도에 대한 신뢰가 선결돼야 한다.

◇장병탁=인공지능이 너무 발전하면 인류 위협이 되고 인류가 지배받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한다. 최근 질문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인공지능 위험성 논의가 많이 이뤄졌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우리가 우려하는 인공지능 단계가 바로 오지는 못한다.

유용하고 편리한 기술은 결국 인간이 수용한다. 인공지능도 비슷하다. 유용한 기술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스마트폰이 좋은 예다. 처음 스마트폰 나올 때 나는 거부했다.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계속 방해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이상호=글로벌 기업이 인공지능 플랫폼을 선점하려 한다. 비영리라고 하지만 안드로이드 같은 플랫폼으로 나올 것 같다. 이게 무섭다. ‘텐서플로우(구글이 주도하는 머신러닝 프로젝트)’ 등은 전부 미국 기업이 만든 것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모든 플랫폼과 라이브러리가 전부 미국에서 나온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 위험성을 비판하면서도 안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라며 지난해 MIT에 1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연구소도 만들고 오픈소스도 제공했다. 모든 기술은 처음에는 직접 만들어 볼까 하더라도 기존에 개발된 좋은 것이 있으면 가져다 쓰는 게 편하다. 그러면서 종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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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알파고에 몰린 국내 취재진<전자신문DB>

◇사회=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 법·제도와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원태=단기적으로 인공지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확산시켜야하기 때문에 규제개선이 필요하다. 중장기 법 체계 준비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령 자율주행자동차 법적 책임 소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한다. 자동차관리법에 무인자동차 관련법이 있다. 문제는 도로교통법이다. 사람을 전제로 한다. 운전면허가 있어야한다.

자율주행자동차 법령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연구목적 실험을 위해 대학 안에서 시험주행하는 경우 등에 한해 임시허가를 받는다.

자율주행자동차뿐 아니라 자동화된 주체에 법적 책임을 묻는 문제를 본격 논의하고 규범과 법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데이터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이라면 법적 책임을 소유자에게 물어야할 것인지, 제조·개발자에게 물어야 할 것인지 모호하다. 사물이 파생시키는 법적 책임을 어떻게 규정할지 논의는 우리나라가 가장 느리다.

◇서병조=제도 차원에서 관련 규제 완화와 이해관계 충돌 해소를 위한 법·제도 근거 마련이 중요하다. 구글이 미국에서 자율주행 실험을 진행하면서 사람을 계속 태운 것은 법에 사람이 탑승해야 한다고 규정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해 교통법을 바꾸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는 구글 요청으로 바꿔줬다. 구글이 별도로 법률가와 노력하며 만든 결과다.

드론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일정 고도로 드론 영역을 확보하는 게 힘들다. 미국은 드론 규제 완화 논의중이다. 중국도 똑같이 한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 인공지능과 이세돌 바둑 대결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이상호=대국 전날까지만 해도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바둑을 이기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거나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당장 벌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가속화될 것은 뻔하다. 5년 지나면 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간 물건이 주위에 널릴 것이다. 구글이 개발하는 자율주행자동차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금방 나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천천히 물이 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많이 끓어올랐다. 우리는 몇 해 전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하는 것을 보면서도 인공지능 사회가 천천히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우리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 현주소는 어떤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뒷받침돼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장병탁=장기적 안목에서 투자가 필요하다. 알파고를 만들어 바둑 알고리즘에 혁신을 거둔 딥마인드는 구글이 인수한 회사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신생 소규모 기업을 큰 가치를 주고 인수하는 문화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가 잃는 게 있다. 딥마인드는 엄청나게 야심찬 회사다. 여러 곳에 적용되는 범용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다. 환경 예측도 가능하고, 사회현상 시뮬레이션에 쓸 수도 있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겠지만 당연히 군사작전에도 적용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독일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 차이를 생각했다. 선진국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한다. 우리는 열심히, 많이 일하는데 정작 부가가치를 내는 일은 많이 못 한다. 구글은 딥마인드를 수천억원에 인수했지만 이를 통해서 얻은 홍보효과나 주식 상승분은 수조원 단위라고 한다. 몇천억원이 비싼 게 아니다. 대기업이 그런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와 선진 기술국 격차는 인공지능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 차이다. 그런 문화가 선진국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졌다. 기술 개발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기계학습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발전했다. 최근 1년 사이 관련 학회에 1000명이 늘었다. 시작은 대학 연구실에서 조용히 하는 연구였다. 이론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했다. 그런 사람들이 딥마인드도 만들고, 실리콘 밸리에서 흥미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윤을 내야하는 회사가 아직 수익원이 불확실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투자했다. 엘론 머스크나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같은 거물이 다 투자했다.

◇이상호=우리나라는 눈에 안 보이는 것에 대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을 뜯어보니 원가가 30만원인데 왜 80만원에 파냐고 비판한다. 나머지는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다. 수많은 사람이 노동으로 만든 것이다.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만 본다. 5년 안에 결과 안 나오면 안 된다고 판단한다. 길게 봐야 된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당장 표시가 안 나는 기술이다. 그래서 투자가 더디다. 어디에 더 가치를 둘지에 대한 관점이 바꿔야 인공지능을 이해할 것이다.

음성인식은 오래 전인 1971년 미국 국방성 과제에서 시작됐다. 지금에서야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쓰고 있다. 그 시절 음성인식 기술 개발은 미흡했다. 컴퓨터 성능도 지금 수준과 비교해 매우 떨어졌다. 이런 점을 생각하고 투자해야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 특성과 이에 맞는 투자를 장기적, 전략적으로 집행해야 된다.

◇이경일=사실 알파고가 사용한 인공 신경망 분야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인재가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공신경망 연구를 가장 많이 한 나라다. 그러나 5년, 10년만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인공신경망 연구 지원이 없어졌다.

힌튼 교수는 지속적 투자를 통해 인공신경망을 30년 동안 계속 연구했다. 인공신경망 기술 95%는 이미 개발된 것이다. 나머지 풀리지 않는 5% 해결을 위해 30년 동안 연구했다. 그것을 구글이 싹 가져갔다. 인공지능뿐 아니라 다음 것도 나올 것 같다.

투자할 때 전략적으로 분야를 선정해 집중해야 한다. 구글은 1년에 인공지능 기술에 3000억원 이상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넓게 보면 5000억원에 이른다. 한 회사가 그렇다. 미국 전체 기업 기술 투자와 정부 차원 연구개발 금액을 합치면 우리 정부 투자 금액과 비교가 안 된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적선 300척과 마주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정부 지원액과 민간 투자액 총량에서 이미 미국이나 유럽보다 한참 늦었다.

원천기술을 연구해야한다. 응용 쪽에서는 제조업과 인공지능을 융합하는 게 필연적이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성장했다. 독일이 취하고 있는 방법이다. 독일도 제조업강국이라 인공지능과 제조업을 융합한다.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으니 헬스케어와 메디컬 분야에 투자가 필요하다. 안전과 국방에 관련된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이원태=인공지능은 철학과 인문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정말 공정한 게임 법칙을 만드는지 검증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것도 사람에게 달려있다.

과거 마차에서 초기 자동차가 나왔을 때 너무 느려서 사람과 같이 다녔다. 기술 발전으로 도로에서 사람이 바깥으로 축출됐다. 문화적 지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 보호를 위한 인권 등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해야 한다. 인공지능 충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960~1970년대 동물 권리 논의가 있었다. 수많은 법률적, 철학적 논쟁이 전개됐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성찰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 독일에서는 이미 진행됐다. 법·제도, 규범적 측면에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서병조=인공지능 얘기할 때 뇌과학 얘기가 빠졌다. 뇌과학 연구자도 사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가야할 길은 무궁무진하다. 인공지능이라는 게 지금은 맛보기 단계다.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과 약인공지능으로 분류한다. 알파고는 약인공지능이다. 사고만 하는 유형이다. 몸체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강인공지능까지 가려면 굉장히 많은 과제가 남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너무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인공지능을 연구하지 않은 게 아니다. 요즘 중요하게 부각됐을 뿐 지난해 이미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보안 등에 인공지능까지 더해져 지능정보사회 대책 마련을 준비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구상 중이다. 우리가 보유한 네트워크 인프라와 인력을 바탕으로 시장 창출을 선도 지원하면 승산이 있다.

‘빅디자인’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도움을 받으면 기존 기술이 퀀텀점프를 할 것이다. 어느 한 부분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수출 주도형 대기업 중심으로 가는데 전문기업 중심으로 가야한다.

◇사회=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산학연관이 힘을 모아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로 나아가는 준비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긴 시간 좋은 의견 고맙다.

정리=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