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창조경제에서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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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기업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기존의 경영 방식이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서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처방책을 직접 제시하는 경영학보다 인문학 서적이 더 잘 팔린다. 경제구조 전환기를 맞아 기업 활동을 왜 하는지에 대한 근본 이유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점점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들은 미래 변화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제품 및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중요해지는 근본 이유는 인간 내면의 힘이 미래 경제에서 새로운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바야흐로 인간의 창조력이 미래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런 창조력을 해방시키고 분출시킨 에너지는 정보기술(IT)의 발전이다.

오늘날 IT는 세계 어느 곳, 누구에게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개인이 세상과 1대1로 대화하면서 흥정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창조력은 드디어 물질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됐다.

창조력이 이끌어 가는 미래 경제는 기업들이 단순히 세상에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시장의 선발 주자가 되고, 거기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창조 활동으로 채우며, 행복을 좇는 과정에서 국가의 부가 자연스럽게 창출되는 경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들의 창조력과 통찰력이 사회 부 창출의 핵심이 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한다.

인간의 통찰력은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분출할 틈새(Niche)를 찾아내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 창조경제는 이런 수많은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기회와 가치들로부터 성장 동력을 얻는다. 21세기는 전 세계에 걸쳐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들이 싹트고 성장하는 토양이자 틈새 창출의 장이 되고 있다. 이 틈새 창출의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통찰력이야 말로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통찰력은 과거와 달리 학식이 뛰어나거나 능력이 심오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습관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보편 인식의 능력이 되었다. 즉 통찰력은 일상의 작은 깨달음을 통해 점점 더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통찰력을 확대시키고 성숙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른바 ‘문사철’로 대변되는 문학, 역사, 철학과 심리학 및 인류학 등 인간 가치를 다루는 학문들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얻어옴으로써 통찰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창조경제에서 인문학은 인간 내면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으로부터 축적한 지식 체계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모아 온 지식과 교양을 한가로이 자랑하기에는 우리 현실이 너무나도 막중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인간 내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정신과 사고를 바르게 하고 올바른 생각과 결정으로 성공하는 삶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즉 수백년 이어 온 지식과 지혜를 공부해 교양을 드높이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의 현실에서 성공하는 삶을 살게 하는 구체화된 실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인문학이란 ‘정신과 사고를 바르게 해 좋은 생각, 좋은 판단, 좋은 결정을 하게 하고 인간으로서 성공리에 자기 소명을 다하게 하는 실천 공부’로 새로이 정의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경제 주체들은 미래의 변화로부터 생존과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들은 세상 흐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과 목표를 자기 주도로 결정하는 데 인문학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한다.

특히 우리는 선진국들이 걸어 온 길을 학습하고 그대로 모방해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앞만 바라보면서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되는 후발 주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향해 뜻과 의지를 정립해야 한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창발하는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발전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한반도 역사는 오랫동안 인문학이 이끌어 왔다. 그러나 한국 인문학은 종종 실질보다 형식 틀에 얽매이거나 소모성 이념 논쟁에 빠지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새삼 인문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상의 흐름 방향을 똑바로 판단하고 비전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문학도 실천 학문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장우(경북대 교수, 성공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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