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암 발생·전이를 촉진하는 히프원(HIF-1) 단백질 발현을 조절하는 새 기전을 규명했다.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제시된 셈이다.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저산소 상황에서 발현해 암 발생·전이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히프원 단백질의 발현이 메틸화(methylation) 여부에 따라 조절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4일 밝혔다.
메틸화는 단백질 같은 유기화합물에서 수소 원자가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 메틸기(-CH₃)가 결합하는 반응으로 특정 단백질의 발현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세포는 빠르게 분열, 성장하기 때문에 고형 종양 내부에는 혈관이 부족해져 저산소 환경이 된다. 히프원 단백질은 이런 저산소 환경에서 발현이 증가, 혈관 형성을 촉진해 암세포 증식에 도움을 준다.
연구진은 히프원 단백질에 메틸화가 일어나면 이 단백질이 분해돼 암 발생·전이가 억제되고, 메틸화가 억제되면 단백질이 안정화돼 암 발생·전이가 촉진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이들은 생체 내에서 히프원 단백질의 메틸화 기능을 밝히고자 히프원 단백질의 메틸화가 일어나지 않는 돌연변이 쥐를 만들어 암 발생과 혈관 생성 기능을 관찰했다.
그 결과 메틸화가 일어나지 않는 돌연변이 쥐는 대조군 쥐보다 종양 크기가 커지고 종양 주위 혈관도 더 많이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히프원 단백질에 메틸화가 일어나면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암이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또 히프원 단백질과 결합하는 `LSD1`이라는 탈메틸화 효소도 발견하고, LSD1이 히프원 단백질의 메틸화를 억제해 안정화함으로써 암 발생·전이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연구는 LSD1 억제제로 히프원 단백질의 메틸화를 증가시키면 암 발생·전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동시에 이 원리를 이용한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성희 교수는 `실제 암 환자에서 나타나는 히프원 유전자의 돌연변이 가운데 메틸화와 연관성 있는 돌연변이들도 발견했다`며 `앞으로 이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에 대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으로 수행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대전=박희범 과학기술 전문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