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올해 열 살이 되는 딸과 한회도 빠지지 않고 함께 보는 드라마가 있다. ‘응답하라 1988.’ 우리 세대가 배경인 이야기인 만큼, 나는 ‘응답하라 1997’부터 ‘응답하라’의 모든 시리즈를 봤다.
딸과 함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응답하라 1994’부터다. 나도 TV를 잘 보지 않고, 아이들도 TV를 좋아하지 않아 같이 보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응답하라 1994’를 보니 옆에 있던 초등학교 2학년인 딸도 함께 보게 됐다.
‘1994년’도의 이야기를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반응은 예상외였다.
재미있는 사투리와 스토리 덕분일까,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전혀 다른 모습이 나와도 낯설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동화되는 것이다. 내가 웃을 때 같이 웃고, 울 때는 물끄러미 처다 보며 함께 드라마를 봤다.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보는 유일한 ‘드라마’였다.
말도 안 되는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 얼굴만 믿고 드라마 시작부터 종영까지 ‘발연기’로 일관하는 얼짱들이 판을 치는 드라마도 많다. 그래서 볼 때 짜증이 나서 많이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 드라마를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어떤 때는 보는 내내 감탄을 내뱉는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20부작을 즐긴다.
내가 대한민국 드라마를 무시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 드라마가 대한민국의 세대 차이를 극복해주고, 심지어 벌어진 세대 간의 ‘소통’의 핵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릿고개를 모르는 나는 부모님 세대의 어려움을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나와 한 세대가 차이나는 나의 딸은 ‘응답하라’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여과 없이 이해하게 된다. 배경이 꼭 부모 세대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고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전달한다.
40대 중반인 남편이 커피숍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남자 대학생들의 대화였다.
“야, 우리 아빠 고등학교 때는 떡볶이 집에서 ‘디제이’가 음악 틀어줬데. 머리 긴 남자 디제이가. 황당하지 않냐?” “진짜? 완전 대박 황당하다. 하하하”
나의 고등학교 때도 학교 앞에 ‘코스모스’라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던 떡볶이 집이 있었다. 1990년도에는 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들도 신기해하는 모습이 됐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고, 세대 간의 격차는 당연하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이러한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고, 정서 차이를 극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좋은 드라마는 ‘소통의 힘’이 있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아들과 딸의 세대 차이와 정서 차이를 극복해준다. 그래서 드라마가 좋다.
‘응답하라 1988’이 끝났다. 드라마의 결말이 주관적인 관점에서 썩 맘에 들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딸과 함께 교감하며 봤던 드라마라서 끝난 것 자체가 아쉽다. 또 다른 ‘교감’이 있는 드라마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 소개 / 정인아
제일기획에서 국내 및 해외 광고를 기획하고, 삼성탈레스 해외 마케팅, 나이키코리아 광고팀장을 지냈다. ‘즐기는 육아’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 <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 매일경제신문사>가 있다. [육아/교육 칼럼 블로그 m.blog.naver.com/inah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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