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쇠퇴한다. 최근 읽은 모이제스 나임의 책 ‘권력의 종말’ 속 한 구절이다. 권력을 틀어쥔 국가는 개인의 삶에 간섭했고, 행정부 관료 조직은 거대해지고 힘은 더 강해졌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국가에서 민간으로, 행정부에서 사법부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기업체 사장에서 주주로 옮겨간다. 이런 변화를 두고 권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에서 나임의 주장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관료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 척결 분위기 속에 한동안 잠잠하던 ‘금피아(금융+마피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길이 덜한 금융 공공기관·단체·기업 수장 자리를 금융당국 출신이 속속 꿰차고 있다.
금융보안원 신임 원장으로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과거 금융보안원 초대 원장도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을 선임하면서 내부 직원 반발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결국 출범도 수개월 늦어졌고 초대 원장이 1년 단임을 약속하면서 가까스로 잡음이 가라앉았다. SGI서울보증보험 차기 사장도 금감원 수석부원장 출신 내정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내부직원 반발로 최종 선임을 미루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 1월 출범을 앞둔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 초대원장에 한국은행 출신이 내정됐다. 지난 6일 공석이 된 저축은행중앙회장도 관료출신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 전언이다.
기관 임원은 전문적인 지식을 포함한 업계 이해가 충분한 인물을 선출해야 한다. 임직원의 두터운 신망까지 받는 인물이라면 더 좋다.
물론 금융당국 출신이라도 이런 조건을 갖췄다면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 근무했다는 것만으로 전리품처럼 자리를 꿰차는 것은 문제다.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