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기를 처음 배울 때였다. 동일한 말과 기회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지만 어떻게 두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엇갈린다. 승부에서 이기려면 상대 수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몇 수 앞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장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장기를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말들을 배치하는 ‘포진법’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와 상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귀마, 원앙마, 면상, 양귀마, 양귀상 등 다양한 포진법이 있다. 포진법마다 장단점이 있고 초반에 수를 두는 방식도 달라진다.
우리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 역시 장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판이라는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된다. 물론 동일한 조건으로 시작하는 장기와 달리 상대방보다 훨씬 많은 말(자원)을 가지고 시작하거나, 반대로 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일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경쟁사) 수를 읽어야 하고 내가 나아갈 몇 수 앞 방향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같다.
싸움 이전에 어떤 전략(포진법)을 세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도 닮았다. 기업 자원은 한정적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어느 곳에 힘을 싣고 어느 쪽을 포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승부에서 중요하다. 승패는 끝나봐야 알지만 포진을 잘못하면 판이 어려워지는 것은 분명하다.
산업계가 사업구조 재편으로 떠들썩하다. 합치고 쪼개는 빅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뤄지고 있다. 삼성이 한화와 롯데에 화학계열 사업을 매각했고 CJ는 SK에 케이블 방송사업을 넘기기로 했다. 큰 관심을 끌었던 면세점 경쟁에서도 기존 사업자가 탈락하고 새 얼굴이 등장했다. 그룹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추가 사업 구조조정 가능성도 있다.
이제 곧 새 포진법이 완성되고 새 대국이 시작된다. 과연 누가 대국(경쟁)에서 승리할지 관심이다.
전자자동차산업부 차장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