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TV홈쇼핑과 T커머스 방송을 한쪽으로 모으는 ‘연번제’ 도입을 타진하고 있다.
채널 연번제는 유사성격 방송을 카테고리별로 묶어 배치하는 것으로 시청자 접근성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스포츠나 드라마 채널을 한쪽에 모아놓는 것처럼 쇼핑 채널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방식이다. 스포츠 채널이나 드라마 채널을 지상파 채널 사이에 편성해 ‘재핑(Zapping) 효과’를 거둬왔던 홈쇼핑과 T커머스는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홈쇼핑과 T커머스 등 TV기반 쇼핑 채널 연번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유통업계는 정부가 기존 TV홈쇼핑보다 T커머스 연번제 도입에 더 큰 무게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배경에는 쇼핑채널 수 증가가 있다. 홈쇼핑 사업자가 7개로 늘어난 데다 T커머스도 활기를 띠면서 올해 하나의 유료방송사업자당 최다 17개 상품판매 채널을 넣을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물건 파는 채널만 넘쳐난다’는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채널이 늘면서 인기 방송 사이에 낀 좋은 채널을 얻기도 어려워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송출수수료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수년전 부터 연번제 논의는 있었고 최근 홈쇼핑과 T커머스 분야 도입을 실무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며 “업계와 전문가 의견수렴도 필요하고 아직까지 정확한 정책 방향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번제 도입은 정부 강제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연번제 도입 정책의지를 보인다면 유료방송사업자가 따를 가능성이 높다. 홈쇼핑과 T커머스, 유료방송사업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유·불리를 따지고 있다.
홈쇼핑 업체는 대체로 연번제에 반대한다. 대기업 계열 GS·CJ·현대·롯데 등은 반대 기류가 뚜렷하다. 반면에 홈앤쇼핑과 공영홈쇼핑 등 후발 사업자는 연번제 도입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기존 대형 홈쇼핑 상장사는 (연번제 도입으로) 거래대금 감소가 나타나면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며 “신생 홈쇼핑은 과도한 채널번호 확보 경쟁을 회피하면서 내실을 다질 기회라는 인식도 한다”고 말했다.
연번제가 도입되면 T커머스 사업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수년 전부터 ‘K쇼핑’을 운영해 온 KTH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T커머스를 차세대 유통으로 육성한다는 발표 이후부터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새로 사업에 뛰어들 사업자라면 연번제 여부에 따라 대응 수위를 달리할 수 있다.
업계는 KTH와 신세계 측 연번제 반대를 예상한다. 기존 홈쇼핑의 ‘서브’ 개념으로 T커머스에 접근한 기존 홈쇼핑계열 T커머스 사업자는 관망하는 분위기다. 송출수수료 감소 우려가 있는 유료방송사업자는 연번제 논의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유통업계 고위 관계자는 “연번제 도입이 여러 부작용을 줄이면서 시청자 선택권, 편리성을 높여준다는 점은 있다”면서도 “TV쇼핑을 산업으로 본다면 연번제가 전체 시장파이를 줄이면서 향후 고용·중소기업 판로 확보에 부정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표]홈쇼핑-T커머스 연번제 도입의 장단점
▲장점
-카테고리별 채널 묶음 제공으로 시청자 편리성·접근성 제고
-과도한 채널 경쟁 및 송출수수료 인상 제한
-채널번호보다 각사 상품소싱 및 서비스 경쟁 유발
▲단점
-재핑 효과 차단으로 전체 TV쇼핑시장 파이 축소
-중장기 관점 고용, 중소기업 판로 확보에도 부정적
-방송사업자 수입 감소로 방송시장 전반의 위축 가능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